이주로 인한 다양성과 정책적 대응 그리고 환대의 윤리
이병하
서울시립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세계 질서를 뒤흔든 코로나19의 거대한 충격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 인구 이동을 규율하는 국경의 가시성은 지난 30년간 우리 삶에 스며든 세계화의 그림자를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국경 봉쇄, 여행 금지 조치를 보면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쉽게 다른 나라를 방문해 왔던가를 반추해 볼 수 있었고,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와 차별을 목도하면서 다문화라는 이름하에 감추어져 있던 우리 안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돌아볼 수 있었다. 세계화의 한 요소로서 국경을 넘나드는 인구의 이동인 국제 이주는 수용국 사회의 다양성을 증진한다. 다양성 수준이 높아질수록 사회 구성원은 폭넓은 선택이 가능하며 다양한 가치가 교류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표출된다. 다양성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양성은 사회 구성원 간의 협력의 바탕이 되는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사회 정체성 및 국가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1). 국제 이주는 초국가적 연결망을 통한 상호 의존성의 증대, 종족적 다양성으로 인한 창의성과 혁신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종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구조화된 인종주의로 이어져 사회 응집력을 저해할 것인가?
국제 이주의 영향
혹자는 현재를 ‘국제 이주의 시대’라고 부른다2). 2020년 현재 전 세계 이주민은 약 2억 8,000만 명으로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약 3.6%를 차지한다. 1970년에 약 8,000만 명이었던 전 세계 이주민 수와 비교하면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거주국을 떠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국제 이주의 시대’란 이주민의 양적인 증가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제 이주가 발생하고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북미, 오세아니아, 서유럽 등을 넘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지리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주의 패턴과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이주는 중요한 글로벌 현상이 되었고, 국제 이주의 영향력은 강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리아 난민 사태는 국제 이주가 국제정치 질서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음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게 된 시리아 난민들이 대규모로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전 세계의 여론을 움직였고, 유럽연합의 국가들로 하여금 난민 수용의 근본적인 기조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는 2016년 6월 ‘뉴욕 선언(The New York Declaration)’을 채택하고, 질서 있는 이주를 위한 국제 협력과 난민 수용의 책임 분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뉴욕 선언은 2018년 12월의 유엔 총회에서 ‘이주에 관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for Safe, Orderly, and Regular Migration)’와 ‘난민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on Refugees)’를 채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주와 난민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변화는 국제 이주가 동반하는 국제적인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시리아 난민 사태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유럽 내부로 대규모의 인구 이동이 이루어진 첫 번째 사례로서 유럽 각국에 정치적으로 큰 충격을 가져왔다. 난민과 이민에 대한 담론이 빠르게 안보화되었으며, 그 결과 유럽 국가들의 선거에서 반이민과 반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였다. 국제 이주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포퓰리즘의 부상 속에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되돌리는 브렉시트로 이어졌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는 지속적인 반이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개방적인 이민정책과 난민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대중들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국제 이주는 중요한 국내 정치적 변동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3).
   전 세계적인 이주의 흐름이 이민 수용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국제 이주는 이민 수용국에 어떻게 국경을 통제, 관리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부여한다. 국가가 질서 있는 이민정책을 통해 국경 통제를 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많은 수의 미등록 이민자가 체류하게 되고, 이는 국가의 행정적 부담과 안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국경 통제의 실패와 변화된 상황에 맞는 이민 개혁의 지체로 인해 약 1,10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민자가 존재하는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 나아가 국경 통제와 관리는 국민국가의 주권에 관한 영역이기 때문에 국제 이주의 증가와 이에 따른 압력은 이민 수용국에 커다란 정치적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국제 이주가 이민 수용국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또 다른 쟁점은 종족적 다양성을 어떻게 통일성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즉 어떻게 외국인과 이민자를 통합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이민자 수가 늘어나고 그 유형이 다양해질수록 이민자 통합의 문제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민자가 수용국의 문화와 언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 교육과정에서 뒤처지고, 그 결과 노동시장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지 못한다면 이민자들은 사회복지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내국인과 이민자 간에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재분배 문제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또한 국제 이주는 이민 수용국에 어떻게 국가의 성원권(membership)을 규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안겨 준다. 국제 이주가 가져오는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수용국의 정치사회 공동체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를 난해하게 만든다. 성원권의 기준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대로 확립되지 않으면, 이는 국가 정체성, 사회 정체성의 위기로 비화될 수 있다.
이민·난민 이슈의 안보화
국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의 증가를 수용국 사회의 집단 정체성 위기로 간주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민, 난민 이슈의 안보화이다. 안보화란 안보와 관련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의제가 새로운 안보 의제로 변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전통적인 안보 개념은 그 대상을 국가로 한정하였고,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주요 안보 위협으로 상정하였다. 국제정치학의 한 분파인 코펜하겐 학파는 안보 영역과 안보 대상을 확대하면서 사회 안보 개념을 제시하였다. 사회 안보는 한 사회가 변화하는 조건과 위협으로부터 본질적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으로, 민족적 정체성이나 언어·문화와 관련된 개념이다. 즉 사회 안보는 이주와 난민과 같은 인구 이동으로 인한 사회 정체성의 변화 및 그 변화로 인한 위협 인식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
   코펜하겐 학파에 따르면 안보는 일종의 화행(speech-act)이다. 특정 이슈가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그것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다면 그 행위 자체가 안보라는 것이다. 국제 이주로 인한 인구 유입과 다양성의 증가가 사람들 사이에서 위협으로 인식되고, 그 위기적 속성을 이슈화하는 것을 안보화로 볼 수 있다. 정치적 리더, 정당, 관료, 압력 단체 등 안보화 행위자들은 이민과 난민 이슈를 사회 정체성의 생존 문제로 정의하고, 그 위협의 실체를 구체화하며, 위협이 가진 긴급성을 부각함으로써 극단적인 대책을 주장한다. 안보화 행위자의 이러한 화행은 그 자체로 안보화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 의해 수용되어야 한다. 즉 안보화는 안보화 행위자, 안보 대상 그리고 청중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주 및 난민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을 부각하는 담론이 대표적이다. 테러리즘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시리아 난민 사태와 같은 대규모 인구 이동의 경우 안보화 행위자와 대중들로 하여금 많은 난민들이 한꺼번에 입국한다면 여기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더욱 많이 갖게 함으로써 안보화를 촉진할 수 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애국법과 신분 증명법을 통해 미국의 안보를 이유로 일부 이민자와 난민 신청자를 배제하려 하였고, 특히 중동 지역의 내전으로 인해 출신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 신청자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인식하여 테러리즘과 무관한 사람들의 난민 신청도 미국을 향한 공격 행위로 간주한 바 있다4). 영국도 9·11 이후 난민 신청자와 테러리즘의 연관성을 부각했고, 난민 신청을 테러리스트 공격을 위해 영국에 입국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반테러리즘, 범죄 그리고 안보법을 통해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난민 신청으로부터 차단하고, 이러한 신청자들의 지문을 10년간 보관하게 함으로써 입법적으로 난민 이슈와 테러리즘을 연결한 바 있다.
이민자 사회 통합
주요 이민 수용국들은 지속적인 국제 이주의 흐름 속에 이민자 2세대, 3세대의 등장과 같은 이민자 사회 내부의 다양성 증가, 이민자 공동체의 발전 그리고 이민자 의식의 성장으로 인한 정치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주와 난민 이슈의 안보화, 수용국 사회의 반이민정서 속에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증진함과 동시에 사회 응집력 약화를 방지하는 등 이민자에 대한 사회 통합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민 수용국은 특정 방향으로 이민자들을 통합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민자 통합 정책을 유형화하자면, 흔히 ‘구분 배제 모형 (differentiated exclusionary model)’, ‘동화 모형 (assmilationist model)’, ‘다문화주의 모형(multicultural model)’으로 나눌 수 있다. 구분 배제 모형은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력 부족 현상이 있는 특정 산업 분야에 한해서만 수용하며, 이들에게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저숙련 외국 인력 정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 모형은 이민자가 출신국의 문화적인 특성을 포기하고 주류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프랑스의 이민자 통합 정책이 대표적인 것으로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인다면 인종·종교 등에 상관없이 프랑스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개방적인 시민권 모델을 지향한다. 다문화주의 모형은 이민자들이 출신국의 문화와 언어를 ‘집단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장려하여 다양한 이민자 그룹들 간의 공존을 추구한다. 다문화주의 모형은 정책을 시행할 때 이민자를 한 개인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그룹의 일원으로 간주한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때 다양한 이민자 그룹들의 문화는 모자이크의 조각들에 해당하고, 이러한 조각들이 모여 캐나다라는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Canadian Mosaic(2017)
출처: Tim Van Horn Facebook


   유럽에서 다문화주의의 실패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주목받는 또 다른 모델이 ‘시민 통합(civic integration)’ 모형이다. 시민 통합에 기반한 이민자 통합 정책은 다문화주의 모델이 이민자 ‘집단’의 수준에 기초한 문화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반해, 이민자가 수용국 사회에 적응할 책임을 ‘개인’에 지우고 이민자 개개인이 수용국 사회의 언어·역사·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사회 통합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고 있다. 이민자가 수용국에 입국하기 전부터 수용국 언어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입국 후에도 계속 일정 시일 안에 언어 교육, 사회 교육, 직업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당해 이수 과정을 불이행할 경우, 벌금이 부과되거나 영주권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이민자가 수용국의 노동시장에 통합되어야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시민 통합 정책은 199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그 이후 핀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시민 통합 정책의 새로운 점은 강제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이며, 이민정책의 양대 요소인 이민 통제와 이민자 통합 측면이 융합되어, 이민자 통합 정책이 이민 통제 요소를 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각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양성 정책도 시민 통합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다양성이라는 담론은 미국에서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가 논란이 되면서5), 이를 대체하는 용어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다분히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다문화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대상 집단의 문화적 권리와 이민자에 대한 집단적 접근이 비판받으면서 다양성 정책은 정책 대상을 집단에서 개인으로 전환하고, 이민자와 내국인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이민자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다. 한 개인은 이민자일 수도 있지만, 성적 소수자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체성을 교차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6).
우리나라의 이민자 통합 정책과 과제
우리에게 국제 이주, 난민, 다문화, 다양성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글로벌 기업 중 상당수가 이민 후속 세대에 의해 창업되었다는 소식, 내전·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행렬, 이주민에 의한 일련의 테러와 범죄를 뉴스에서 접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슈들이 남의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면,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우리의 문제로서 난민 문제를 성찰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자녀들의 등교 제지, 경북대학교 인근 이슬람 사원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가 진정 다양한 문화 및 정체성과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반추하게 한다. 한국 내 외국인 인구가 1백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고, 2021년 말 기준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수는 약 215만 명으로, 이는 총인구 대비 약 4.1%이다. 숫자를 넘어서 대중매체에 통상적으로 재현되는 농촌의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3D 업종의 외국인 노동자, 좀 더 가까이 대학 내에서 같이 생활하는 유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바야흐로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은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이로 인한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진행된 이주 노동자의 유입과 재중 동포의 국내 노동시장으로의 편입, 그 이후 2000년대 들어 급증한 결혼 이민 등 다양한 이주 패턴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다문화적 현실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는 더 이상 한국 사회가 글로벌한 현상인 국제 이주의 압력으로부터 무관한 곳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며, 이에 국제 이주가 동반하는 다문화적 현실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효율적인 정책적 대응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저출산·고령화에 의한 인구 변동이 주요 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이민정책은 인구정책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향후 이민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의 총인구는 2028년을 정점으로 하여 하락할 전망이다. 통계청은 장래인구특별추계(2017년~2067년)에서 2029년부터 인구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2067년이 되면 ­1.26%의 인구 성장률을 나타낼 것으로 예측했다. 고령 사회로의 진입도 예상보다 빨리 진전되어 2017년 770만 명이었던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가 2025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서고 2067년에는 1,827만 명에 달해, 2017년 13.8%였던 고령 인구 비율이 2076년에는 46.5%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비해 생산 가능 인구는 2017년의 3,757만 명에서 2067년에는 1,784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는 잠재 부양비, 즉 고령 인구 대비 생산 가능 인구비의 감소로 이어져 소비가 줄어들고 경제 전반에 걸쳐 활력이 떨어지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경제적 영향은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복지 분야를 위시로 한 국가 재정 구조에 큰 충격을 가할 것이다7). 이 때문에 생산 인구 감소로 인한 미래의 노동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이민을 활용하여 인구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담론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민정책의 확대를 통해 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을 방지하자는 주장에서부터 이민 확대로 인한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까지 다양한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인구학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구정책과 함께 이민정책의 본격화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공론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여론의 변화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의 증가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2011년과 2012년에는 ‘한국 사회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응답이 각각 74.2%, 70.1%였으나, 2013년에는 이러한 견해가 67.5%로 하락하였다. 사회 통합에 저해가 될 것이라는 응답은 2011년과 2012년의 25.8%, 29.9%에서 2013년 32.5%로 증가하였다. 2010년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의 사회적 가치를 어지럽힌다는 의견에 동의한 20대는 13.3%로 60세 이상의 18.8%보다 낮았으나 2013년에는 20대의 31.3%가 이에 동의하여 3년 사이 2배 넘게 증가하였다. 2015년의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 따르면, 난민을 이웃으로 삼고 싶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52%였고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48%였다. 하지만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이민정책의 근본 기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 형성을 추진해야 하고, 특정 이민자 집단에 한정된 이민자 통합 정책에서 벗어나 이주로 인한 다양성 증가에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의 이민정책은 후발 이민 국가로서 국제 이주의 영향력에 대해 제한적인 이민정책을 기본으로 하여, 큰 방향에 대한 합의 없이 사안별, 이주민 집단별, 부처별 단기적 대응이 축적된 것이다. 이민자 유입의 사회경제적 영향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미 이민의 일반적 패턴이 상당 부분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이민정책의 전반적인 기조에 대한 합의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적 정책 목표를 설정하며, 이에 맞게 파편화된 법제와 정비를 조직해야 한다. 따라서 저출산·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인구 감소에 대비하여 이민 개방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력 수급, 국제결혼 위주의 제한적인 이민 수용을 유지할 것인가, 이민 문호를 개방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이민자를 선별하여 수용할 것인가, 이민자의 사회 통합은 어떤 모델에 기반할 것인가, 현재의 선별·동화·온정주의를 넘어서는 모델은 무엇인가 등 이민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관리하고 이민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민정책 체계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중앙정부 부처 중 법무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등의 부처가 이민정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다른 부처들도 부분적으로 이민정책과 관련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중앙정부 부처별로 업무 영역이 나뉘고 각 부처가 가지고 있는 고유 기능을 활용하며 전문성을 발전시키는 건설적 분절화가 나타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 간 경쟁은 부처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과 부처 간 칸막이 현상으로 나타나 종합적인 이민정책의 기능을 살리기 위한 정책의 조정과 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특히 이민자 통합 정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독자적인 정책 영역과 사업을 개발하는 것에서 취약하다. 이민정책에 있어 이민자들이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인 지역사회가 가지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수한 조건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기보다 중앙정부의 정책을 전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상이한 추진 체계와 유사 사업 중복은 고스란히 지방자치단체로 전달되면서 이민자의 실생활에 맞는 이민정책 서비스 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이민정책 전문 인력과 조직이 미비하여 중장기적 관점의 정책과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정책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주 다양성과 도시
이민정책은 일반적으로 국가 수준에서 수립된다. 물론 경제적인 요건, 인구학적인 상황에 따라 도시나 지역 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이민자를 받아들일 것인지, 이민자들의 체류 조건, 시민권 요건 등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중앙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부딪히는 실질적인 문제들 특히 주거·보건·교육 등의 문제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인 지역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국가 수준의 이민정책 목표와 지역에서 요구하는 구체적 정책 사이에 간격이 생겨나며, 이러한 이유로 국가 수준의 이민정책과 지역 수준의 이민정책 사이의 조율이 필요하다. 국가 수준의 통일성과 지역 수준의 다양성 간의 조화를 위해서는 이민자들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도시적 맥락의 이민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약 39억 명인 도시 거주 인구는 2050년에 64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 이주는 이러한 도시화 현상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도시 내에서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을 심화하고 있다.
   다음의 표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이민자 비율을 보여 준다. 두바이, 브뤼셀 등은 예외로 하더라도 런던, 로스앤젤레스, 싱가포르, 시드니 등의 도시는 30% 후반에 해당하는 이민자 비율을 가지고 있다. 주요 도시의 이민자 비율은 이들 도시가 위치한 국가의 평균 이민자 비율을 훨씬 상회하며, 많은 이민자들이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거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캐나다 이민자의 46%가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고, 미국 이민자의 40%가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으며, 호주 이민자의 28%가 시드니와 멜버른에 거주하고 있다8).

주요 도시의 이민자 비율


출처: IOM, 2015


   앞서 소개한 시민 통합 모델과 다양성 정책이 이민자 개인의 참여와 수용국 사회와의 쌍방향적 교류, 소통, 공유를 강조한다고 볼 때, 도시의 역할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민자 집단과 외국인 집단이 상호작용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집단들 간의 접점을 제공하기에 이민자와 외국인 집단을 추상화하여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중앙정부와는 달리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점에서 중앙정부와는 차별화된 정책적 고민으로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이민자 통합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통합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 도시는 이민자와 외국인 집단 및 내국인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서로 교류한다는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차별화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는 상호 문화도시(intercultural city)의 모범적인 사례를 선정하고 이를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상호 문화도시는 다인종 도시가 다른 국적, 언어, 종교, 문화 등을 가진 다양한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을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원으로 인식하며 공적 영역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교류와 공유를 통해서 도시의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적 교류와 공유는 인권, 민주주의, 법의 지배와 같은 보편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차별 금지, 평등 보장과 같은 적극적인 정책들이 시행된다. 정책 추진 체계 면에서도 시 정부는 시민사회, 기업, 전문가들과의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문화 간 교류와 공유를 촉진하려고 한다. 코펜하겐은 ‘We Are Copenhageners’ 캠페인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 공동의 기본 가치 공유를 추구하면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도시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뉴욕시는 높은 이민자 인구 비율에 맞게 다양한 이민자 커뮤니티의 참여를 촉진하고, 이민자 리더십 양성을 통해 이민자 통합에 노력하고 있다.
   이민자 통합 정책에 있어서 그 흐름이 다양한 문화 집단 간의 단순한 공존에서 이민자 개인의 참여와 소통, 공유로 전환됨에 따라 문화 집단 간의 교류와 상호작용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도시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도시는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기반 속에 이루어지는 문화 간 공유를 통해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문제가 아닌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함으로써 벽과 경계를 만드는 다양성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접촉 지대를 넓히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social infrastructure)를 구축하여 다양성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응집력 감소를 방지해야 한다.
환대의 윤리
지금까지는 이주로 인한 다양성 증가 그리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주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이주로 인한 다양성을 마주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흔히 정치는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윤리는 친구와 적, 주체와 타자를 구별하는 것 자체를 고민하고 이를 통해 타자를 대하는 인간의 선택과 행위를 숙고한다. 이 점에서 환대의 윤리는 이주로 인한 다양성 시대에 타자, 경계인, 이방인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해 준다. 국제 이주의 영향력 증가, 이로 인한 다양성의 증대와 사회적 응집력 약화와 같은 도전은 정치학으로 하여금 타자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정치학에서 타자, 경계인, 이방인은 쉽게 국가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국경을 넘나드는 행위가 증가하고 이러한 행위들이 출신국 혹은 수용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증가할수록 주체와 타자, 주인과 손님, 그 둘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에 대한 고민은 정치학의 새로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에 대한 공간적 상상력을 부여하는 환대 개념은 국제 이주와 난민 문제를 성찰하는 중요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손님이 내 집의 문밖에 서서 내 집에 들어와 살기를 청하고 있다. 주인인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문밖의 손님은 내 집에 들어올 권리가 있는가? 나는 손님을 초대한 적이 있는가? 손님은 내 안전을 위협할 것인가, 아닌가? 나는 손님을 환대해야 하는가? 만약 내가 환대했을 때, 손님이 내 집을 차지하고 나를 쫓아내면 어떡하나? 많은 이주민, 난민들이 더 나은 경제적 조건을 찾아 혹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타국의 문턱에 서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환대 개념은 이러한 질문을 숙고하기 위해 유용한 이론적 도구이다. 환대는 주인이 손님을 환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 안에 있는 주인이 ‘문턱을 사이에 두고’ 문밖에 있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대라는 개념 속에는 주인과 손님, 주체와 타자라는 행위자들 간의 관계가 들어 있으며, 이러한 행위자들의 관계는 문, 문턱, 집이라는 공간적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또한 환대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는 행위일 수도 있고, 개인적 수준의 환대는 지역 공동체, 국가, 국제 수준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에게 환대 개념은 칸트(Immanuel Kant)의 『영구평화론』으로 친숙하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환대는 이방인이 누군가의 영토에 도착했을 때, 적대적으로 대접받지 않을 권리로 정의했다. 환대가 손님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면, 주인 역시 어떤 범위 내에서 행동해야 하는지 따질 수밖에 없고, 결국에 주인과 손님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서로 경계와 영역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칸트의 환대 개념은 조건적이다. 조건적 환대는 주인이 손님에게 “내 집처럼 편안히 쉬시길. 그러나 여기는 당신 집이 아니라 내 집임을 명심하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면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무조건적 환대를 말한다. 무조건적인 환대는 내 집을 열어 손님에게 공간을 내주는 것으로, 권리로서의 환대와 단절을 통해 주인과 손님,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무조건적 환대는 주인과 손님 간의 호혜적인 관계는 물론 손님이 적대적으로 변하는 위험한 상황까지 감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대는 가능한가? 무조건적 환대는 불가능하고 정책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 무조건적으로 환대를 베풀면 주인의 주권성이 소멸되어 결국 환대를 베풀 공간인 집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환대를 지향하다가 환대 자체를 위한 공간과 수단이 사라지면서 필연적으로 환대는 조건적으로 실행되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데리다는 무조건적 환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불가능한 것을 왜 말하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좌절하는 대신, 무조건적 환대는 조건적 환대와 서로 환원될 수 없지만,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에 주목하고, 둘 사이의 간격을 좁혀 가는 것이 환대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환대는 아직 오지 않은 환대라는 점에서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 환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환대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초대한 손님을 관용하는 것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환대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존재한다. 하지만 환대의 윤리는 끊임없이 그 사이의 강을 건너라고 요구한다.
   국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의 시대에 우리는 초대받은 선량한 이주민만을 관용하고 이들을 국익을 위한 자원이자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환영한다. 그렇지 않은 이주민은 불량하고 위협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집단적 이방인으로 분류하여 배제하고 차별한다. 설령 그들이 불량하다 하더라도 왜 그렇게 됐는지 묻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며, 교류하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무조건적 환대 개념은 주인의 위치와 손님의 위치를 바꿔 보고 집과 밖을 넘나드는 문지방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주인과 손님, 선주민과 이주민이라는 위치를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변화를 느껴 보라는 것이다. 환대가 잘 드러나는 지점은 경계를 넘나드는 문지방이고, 이 문지방은 이것과 저것이 분리되는 공간이자 이것이 저것으로 되는 지점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환대의 실천을 통해 이민 수용국의 국민들은 이민자의 위치에 서 보기도 하고, 이민자는 수용국의 지역사회에 참여함으로써 주인의 위치에 서 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제 이주는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 아닌 ‘이것과 동시에 저것(both/and)’일 수 있으며, 국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은 수용국에 가해지는 위협이 아니라 손님이 주인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줌으로써 주인과 손님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각자 상생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이다.
나가며
국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의 증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우리와 다른 존재들을 다루는 방식과 우리와 타자가 주인과 손님으로서 서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경계선을 그리며 살아간다. 출신 지역, 학교, 소속 학과 등 선명한 선 안에 거주함으로써 우리는 심리적 안도감과 안정된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한다. 아마도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선은 민족, 국민일 것이며, 우리와 구분된 존재들을 선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우리는 보다 단일한 우리가 되고,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주변인들에게는 우리 아니면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국제 이주로 인한 다양성의 증가는 계속 선명한 선을 살짝살짝 지워 갈 것이고, 이에 대해 주류 사회가 보다 진한 펜으로 굵은 선을 그려나간다면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다.
   짐멜(Georg Simmel)이 말하듯 이방인들은 개인이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이방인으로 상상된다.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와 그들’로 상상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시 다양성과 환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흑인과 백인의 사진을 피실험자에게 보여 주면 피실험자는 인종으로 먼저 사진을 구분한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에 유니폼을 입히면 인종으로 구분하는 비율이 큰 폭으로 감소한다9). 타자를 상상하는 다양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인과 손님의 위치를 바꿔 보고 분명한 선과 경계를 넘나드는 환대의 윤리 역시 중요하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는 기회가 많을 것이고, 이를 통해 문지방을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 우리 사회의 그들처럼 되어 본다면 그들을 다른 민족, 비국민이 아닌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인간으로 대하는 감수성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선 안에서 선 밖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아시아인 차별에 분노한다면, 아시아인이라는 단어를 ‘이주 노동자’, ‘난민’으로 바꿔 보면 어떨까 한다. 경계 밖으로 나가 보거나, 경계 안에서 선 밖의 사람들을 사유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일 것이다.
목차
다양성 속의 통일을 찾아서
이주로 인한 다양성과 정책적 대응 그리고 환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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