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속의 통일을 찾아서
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다양성 속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실현하기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합창이라고 할 수 있다. 합창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각기 다른 파트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때로는 파트 간에 불협화음이 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곡에 긴장감을 주고 다시 화음으로 돌아가게 되면 안정감을 주는 효과를 갖는다. 이때 지휘자는 거의 전능한 권한을 가지는데, 모든 단원은 지휘자가 이끄는 대로 박자와 강약을 맞춰야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진다.
   합창보다 다양성과 복잡성이 한 단계 높은 것이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생각할 때 부부간에도 성격과 가치관이 다를 수 있고, 부모와 자녀 간에는 그 차이가 더 크다. 가장의 권한이 크다 하더라도 다른 가족 구성원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하려고 하면 가정 내에 불화가 생길 뿐이다. 권위가 있지만 그것을 부드럽게 행사할 때 가정이 화목해진다.
   대학교를 생각하면 복잡성과 다양성이 훨씬 커진다. 고려대학교에는 서울캠퍼스와 세종캠퍼스를 합쳐서 총 23개의 단과대학이 있다. 그중 문과대학 내에는 14개의 학과가 있고, 한 학과 내에는 10명 이상의 교수들이 있기도 하다. 조직의 규모와 복잡성이 커진 만큼 구성원들의 특성과 욕구는 다양하고 이것을 조정하고 통일하기는 더 어렵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팔로워십(followership)을 이끌어 낸다.
   국가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지역, 인종·종족, 계층, 언어, 종교, 이념 등으로 더욱 분화되고 대립과 갈등이 더 심해진다. 특히 인종, 종족, 언어, 종교, 역사가 다른 집단들이 어쩌다 한 국가로 묶이게 되고 더욱이 집단 간 불평등이 심할 경우 분열하려는 힘은 더 크게 작용한다. 만일 분리·독립하려는 소수집단을 다수집단이 힘으로 억압하려고만 하면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국가 지도자의 포용적 리더십이 통합된 국가를 만들 수 있다.
   국제연합(UN)과 같은 세계적인 기구는 사람이 만든 조직으로서는 가장 광범위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실효적인 명령 체계가 서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했어도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국제연합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은 자국의 이해에 반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국제연합의 노력을 무력화한다.
   앞의 예들을 살펴보면 조직의 규모와 복잡성과 다양성이 커지면 조직 내의 일치성과 통일성이 줄어들고,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들의 차이와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영향력이 약해져서 결국 분열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양성 속의 통일을 찾는 방안들
동화론
다양한 특성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다원화 사회에서 질서와 통일을 이루는 방안 가운데 전통적으로 사용된 이론이 동화론(assimilation theory)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이민자와 소수자들은 지배 집단의 주류 문화를 수용하고 대신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포기할 것을 요구받는다. 미국에서는 ‘멜팅팟’(melting pot, 용광로)이라는 은유(metaphor)가 미국에 이민 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아메리칸’이라는 동질적인 정체성을 갖는 국민으로 변한다고 설명한다1).

멜팅팟
출처: 아이오와 대학 도서관 특별 컬렉션 부서2)


다문화주의
동화론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인과 같은 백인계 이민자들은 몇 세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되고 동화되었지만, 흑인·아시안·히스패닉 등과 같은 유색인종들은 아무리 많은 세대가 지나가더라도 정치·경제적으로 백인에게 예속되거나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 인종 집단은 1950년대부터 민권운동을 전개하면서 백인, 남성, 중상층, 기독교에 기반한 기득권층에 도전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 및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흑인 민권운동이 흑인 문화와 그 정체성에 대한 인정과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문화주의로 발전하였다. 캐나다에서는 1960년대에 퀘벡주의 프랑스계 사람들이 영국계의 지배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을 전개했다. 자칫 두 개의 국가로 분열할 수 있는 위기에서 당시 총리였던 피에르 트뤼도가 다문화주의 정책을 통해서 프랑스어를 영어와 함께 공식어로 지정하고, 퀘벡주 내 프랑스계의 문화 자치를 보장하면서 하나의 캐나다를 유지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트뤼도 자신이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프랑스계 부친과 영국계 모친 사이에서 출생한 다문화 가족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리고 몬트리올대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미국, 프랑스,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이런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성장 과정이 트뤼도로 하여금 다문화주의를 통해 캐나다를 통일된 국가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샐러드 볼(salad bowl)’에 비유된다. 샐러드 접시에 담긴 여러 가지 채소들이 고유한 색과 풍미를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에서 질서와 통일을 이뤄 간다는 것이 다문화주의에 관한 쉬운 설명이다. 서양 요리에 샐러드가 있다면 한국에는 비빔밥이 있다. 쌀밥에 고기와 여러 나물을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비비면 개별 재료의 식감이 남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새로운 요리가 생겨난다.
   다문화주의는 연구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데 그래도 공통적인 요소들을 종합해서 정의하면 ‘한 사회 내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 집단의 문화를 단일한 문화로 동화하지 않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존하게끔 하는 데 목적이 있는 이념과 사회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3). 그리고 다문화주의가 지향하는 목표는 다양한 소수집단의 문화를 인정하고 보호하며(문화 다양성의 인정과 보호), 집단적 권리를 인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기회 평등 보장), 소수집단과 다수집단 간의 상호 이해와 공존을 도모하여(문화 다양성 증진), 궁극적으로 다양성 속에서 통일(unity in diversity)을 추구해 사회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샐러드 볼
출처: 프리픽4)


비빔밥
출처: 문화체육관광부5)


   그런데 다문화주의는 2000년대부터 정치권으로부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잇달아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주장을 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0년에 “독일이 추구해 온 다문화주의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했고,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2011년에 “영국의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2011년에 “프랑스에서 다문화주의 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다문화주의가 문화 상대주의에 빠져 이민자와 소수 종족 집단의 문화를 인정하는 데 그치고, 이들이 거주국 문화를 학습하고 수용하지 않게 하여 거주국에 통합하기보다는 고립과 분열을 가져왔다고 주장하였다.

시민적 통합
실패했다고 여겨진 다문화주의의 대안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와 같은 서구 유럽 국가에서는 ‘시민적 통합(civic integration)’이 부상하였다. 이것은 이민자와 소수 종족 집단이 거주국의 언어를 학습하고 주류 문화를 수용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주류 사회의 기회 구조에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6).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구 유럽 국가들은 이민자를 대상으로 사회 통합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시민권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일련의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이민자와 소수 종족 집단이 주류 사회의 기회 구조(교육·취업·주거 등)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회 통제와 통합만을 강요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상호문화주의
다문화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으로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가 199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다문화주의의 ‘다(多, multi)’라는 접두어는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 상호문화주의의 ‘상호(inter)’라는 접두어는 서로 간의 관계성에 대해 언급하고 통합을 지향한다. 그래서 상호문화주의자들은 다문화주의가 집단 간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데에서 그치고 문화 간의 적극적인 대화와 소통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민자와 소수 종족 집단들이 거주국 사회에 참여하지 않고 고립해서 결국은 사회의 분열을 조장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주장에서 잘 드러나듯이 상호문화주의는 여러 문화의 단순한 공존을 넘어 문화 간 대화와 소통을 통해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려 한다. 여기서 문화 간 의사소통과 상호 관계가 핵심 개념이다. 상호 주관성에 기반해서 서로가 공유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문화 다양성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게 자원과 힘이 되게끔 하자는 것이다7).
   상호문화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인도계 독일 철학자 람 아다르 말(Ram Adhar Mall)8)은 상이한 문화들이 병존하는 것이 아닌, 더불어 존재하는 연대적 공존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참여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상호 문화 철학은 문화 간의 이질성과 다양성을 소중한 자원으로 삼아서 문화적 대화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하나의 보편적이고 인류적인 차원의 철학과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마련해 나가고자 하는 이론이라고 설명했다9).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은 상호문화적 해석학을 제안했다. 이것은 문화들 사이의 중첩(겹침, Überlappung)에 대한 유비적 해석(analogical interpretation)을 통해 보편성과 관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문화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유사성도 있어서 문화 간의 중첩을 통해 보편성을 찾아내고, 결국 모든 문화는 보편성이 서로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발현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양 논리학에서 삼단논법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대전제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매개념(the middle concept)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인도식 오단 논법에 따르면 ‘산 저기에 불이 있다’는 명제에서 시작해서, ‘왜냐하면 거기에 연기가 있기 때문에’라는 근거를 들고, ‘연기가 있는 곳에는 항상 불이 있다, 마치 부엌에서처럼’이라는 선례를 들어, ‘산 저기에 연기가 있으며 연기에는 항상 불이 따라다닌다’라는 적용을 거쳐, ‘그래서 산 저기에 불이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추론에는 적어도 두 가지 서로 다른 논리적 사유 모델이 있고, 이러한 차이는 다양한 특징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상호작용적 다문화주의
다문화주의의 한계로 여겨지는 것 중의 하나가 이 이론이 한 집단의 문화를 고유한 것으로 보고 이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 문화권에서 관습으로 지켜지는 여성 할례, 일부다처제, 조혼 등은 여성의 자유의사에 반해서 억압적으로 행해질 수 있다. 특정 집단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해서 그 집단 내에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인도계 영국 철학자인 파레크(Bhikhu Parekh)는 ‘상호작용적 다문화주의(interactive multiculturalism)’를 해법으로 제안했다. 그는 소수집단의 문화와 집단 정체성은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하지만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관습은 허용되지 않으며, 법률을 제정하여 비도덕적인 관습을 금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떤 문화적 관행을 허용할지 또는 금지할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문화 간 대화가 중요한데, 대화는 사회 전반의 제도와 관행이 기반이 되는 사회의 유력한 가치(예를 들어, 인간의 존엄성, 평등)에서 시작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소개했던 철학자의 말과 유사하게 다원적 보편주의를 제안하는데, 상호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해 보편적 가치들이 수렴되고, 사회 구성원들 간에 공유되는 가치들에 민주적 권위를 확립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문화적 용광로
캐나다의 문화·예술 정책 활동가이며 ‘2005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유네스코 협약’을 주도한 게리 네일(Garry Neil)10)은 미국 역사에서 문화적 용광로는 실제로 작동하지 않았고, 캐나다에서 다문화주의는 다양성 속의 통일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동화를 통해 동질적인 미국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전통·언어를 유지하는 다양한 종족 집단들이 계속해서 존재했고, 캐나다에서는 다문화주의를 통해 많은 종족 집단들이 고유한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통일된 사회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용광로 이론이나 다문화주의는 모두 신화에 불과하며, 보다 현실에 부합하는 모델은 ‘다문화적 용광로(multicultural melting pot)’라는 것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선주민과 이주민들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지만 상호작용하고 혼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문화 간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네일은 예술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문화 집단 간에, 그리고 선주민과 이주민 간에 예술적 표현을 공유하는 것은 상호작용을 장려하고, 상호 이해를 촉진하며,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형태라는 것이다.
   네일의 다문화적 용광로 비유를 한국에 적용하면 앞서 언급했던 비빔밥과 유사한 점들이 있다. 다양한 재료들이 섞여서 비빔밥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처럼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때 쌀밥과 고기, 나물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참기름과 고추장인데, 이것은 점성이 있어서 그 자체로는 흩어지기 쉬운 재료들을 접착제처럼 붙잡아 준다. 더욱이 고소하고 매콤한 맛과 고운 색깔을 더해 준다. 이런 비유를 사회에 적용하면 참기름과 고추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대화와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간에 진정성 있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화 간 공통점과 보편성을 찾아내고 이것을 중심으로 일치감과 연대감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때 예술, 스포츠, 문화는 문화 간 대화와 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는 윤활유와 같다. 예술 공연, 축제, 스포츠 행사는 사회 구성원 간의 교류 협력의 기회를 늘리고, 상호 이해와 친밀감을 높여서, 궁극적으로 사회적 결속력과 연대감을 키우는 기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선주민과 이주민, 다수자 집단과 소수자 집단이 공동의 문화·예술 행사에 참여해서 서로 교류하고 이해하고 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 사회 통합의 중요한 조건이다.
다양성 속의 통일을 이루는 조건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를 트로퍼(Harold Troper)11)는 인종·민족·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인구학적 현상,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하는 사회적 이념, 인종·민족·국적에 따른 차별과 배제 없이 모든 개인이 동등한 기회를 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부의 정책과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요소는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혈통과 문화적으로 동질적이었던 사회에서 급속히 다인종, 다문화사회로 변해 가는 한국이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사회 집단 간의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문화는 한 개인의 정체성의 근원이며 자신의 문화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본연적인 것이다. 이민자에게 주류 사회로의 편입을 조건으로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문화적 감수성을 갖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예의를 지켜야 한다. 각자의 문화에서 신성시하는 것이 무엇이고 기피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상대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최근 대구 북구의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일부 지역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 삶은 돼지머리를 놓고, 족발을 내걸고, 삼겹살 파티를 벌인 행동은 혐오 표현이다.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을 표현하더라도 무슬림 신도들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둘째,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을 묶어서 하나의 공통된 문화와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다. 파레크가 말했던 사회 전반의 제도와 관행의 토대가 되는 사회의 핵심 가치(자유·평등·인권·민주주의 등)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수용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 통합 프로그램은 이민자가 거주국의 문화적 지식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예술·스포츠·문화 활동을 통해서 서로 다른 사회 집단들이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친밀감을 형성하여 사회적 연대감을 갖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편견은 무지에서 오고, 무지는 접촉의 부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편견을 감소하는 방법으로 접촉 가설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두 개의 집단이 공통의 상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등한 지위에서 지속적으로 접촉하면 서로에 대한 편견이 감소한다고 한다12). 이런 접촉 가설의 조건을 충족하는 좋은 사례가 남북 여성 합창단 ‘여울림’이다. 여울림이라는 이름은 ‘여성이 어울리며 노래하여 만드는 평화의 울림’이라는 의미이다. 이 단체는 남한 여성과 탈북민 여성이 합창을 통해 상호 간의 이해와 소통을 도모하고,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넘어 평화를 실천하는 여성들의 연대체이다. 앞서 든 비빔밥의 예에서 참기름과 고추장이 윤활유와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문화 간에 소통하고 연대하는 방법으로 예술·문화·스포츠만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셋째,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의 생득적 특성과 상관없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 개인이 인종·성별·연령·지역·계층, 장애 여부,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된다고 생각할 때, 그는 사회에 대해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지기 어렵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한 개인의 자기 개발 기회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각 개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혁신과 성장의 잠재력을 상실케 한다. 이런 이유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넷째,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고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단지 문화 간 대화와 소통만으로 집단 간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민자와 소수자 집단이 안정된 생활과 평등한 기회를 영위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정부가 수행해야 할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 사회가 인종, 종족, 문화적으로 다양해질수록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주의 정책 수준의 변화를 시계열적으로 보여 주는 다음의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수사와는 달리 서구 국가들은 다문화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거나 확대해 왔다13). 단지 다문화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를 문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다문화주의 정책과 프로그램을 확대한 것이다.

이민자 대상 다문화주의 정책 지수의 변화, 1980-2020

출처: Multiculturalism Policies in Contemporary Democracies14)

맺는말
현재 한국은 단일민족·단일문화사회에서 다민족·다문화사회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이미 전체 인구의 5%가량이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외국인 주민, 귀화자와 그들의 자녀 등)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민자가 가져다주는 인적·경제적·문화적 자원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다양성을 혁신과 창의성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사회는 고립과 분열의 길로 가게 된다. 따라서 다문화사회에서 개인은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행동을 실천하고, 사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집단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정책과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이민자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노인, 탈북민, 성 소수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 후 남북한 주민 간의 사회문화 심리 통합에서도 다문화주의와 상호문화주의는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획일성의 복제’가 아니라 ‘다름의 조직화’, 그리고 ‘획일주의’를 극복하면서 ‘연대와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 다원화된 사회가 분열하지 않고 통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이다.
목차
다양성 속의 통일을 찾아서
이주로 인한 다양성과 정책적 대응 그리고 환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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