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왜 다양성이 필요한가?
심영환
삼성SDS
다양성은 한 시대의 기존 문법과 틀을 깨는 시발점이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또한 문화, 과학, 예술, 스포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게이 지수(Gay Index)라는 것이 있다. 이는 어떤 지역이 게이에게 얼마나 친화적인지를 수치화하여 나타낸 지수로 단순히 게이에 대한 문화적 포용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치가 높을수록 다양성에 대한 포용도도 높기 때문에 사회·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OECD 국가의 잘사는 도시일수록 게이 지수가 높다.
   과학은 기존의 이론(귀무가설 歸無假說)을 깨뜨리기 위한 대립 가설을 수립하고 그것을 검증하며 발전해 왔다. 물론 귀무 가설이 기각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렇기에 새로 채택된 대립 가설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윈의 ‘자연 선택설(natural selection)’을 예로 들어 보자. 자연 선택설 이전에 학계는 생물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잘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라마르크(Lamarck)의 용불용설(use and disuse theory)을 주류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은 후손에게 유전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된 이론으로 증명되었고, 환경에 유리한 형질의 개체가 살아남고 그 형질이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자연 선택설이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즉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이치이다.
   예술 분야는 어떠한가? 새로운 미술 사조도 주류 세력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조롱을 견뎌 내며 등장했다. 예를 들어, 미술계의 인상주의 화풍이 그렇다. 인상주의 그림은 사진기의 발명으로 인해 그림의 순간적인 재현 능력이 더 이상 사진을 능가할 수 없게 되자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빛의 미세한 변화를 캔버스에 담은 것이다. 게다가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화가들이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야외 풍경화를 많이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즉 인상주의는 대상의 한순간을 담기 위해 신속하게 붓질을 하고 구체적인 형상은 과감히 생략하면서 자연의 다채로운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모네가 인상주의를 가리켜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대상의 느낌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상주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캔버스 위에 아무렇게나 그어진 붓놀림이며, 정신병자들이 길바닥에서 주운 돌을 다이아몬드라고 우기는 것처럼 웃기는 일이다.”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는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은 시대의 주류로부터 벗어난 다양성의 산물이었다.
   스포츠의 경우에도 수영의 플립턴(flip turn)과 높이뛰기의 배면뛰기(fosbury flop) 기법 등이 이전의 획일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성 차원에서 발굴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자신과 산업 내의 성공을 가져온 요소에 대해 뿌리 깊이 박혀 있거나 널리 공유되는 믿음을 통해 운영된다. 왜냐하면 그동안 성공의 방식에 익숙해져 통념과 관습을 유지하는 것이 경영의 리스크도 줄이고 안정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굳이 불필요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다양성을 존중받기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그 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도태된다. 다양성의 또 다른 이름은 혁신이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다양성이 지니는 의미
다양성의 사전적 의미는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등이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이지만 여기서는 획일성과 통일성이라는 반대어를 연상하는 것이 다양성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기업에 있어 다양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톺아 보자.

첫째, 다양성 관점의 조직 구성과 역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과 유럽 등 해외 기업에선 최고다양성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가 존재하며 그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최고다양성책임자는 기업의 다양성 전략을 이끌며 인종, 성별, 세대, 국적 간 차별에 맞서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조화로운 발전을 견인한다. 좋은 기업일수록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양사를 공부하다 보면 오랫동안 유럽의 절대 권력을 누렸던 합스부르크(Habsburg) 가문이 왕권 강화를 위해 몇 세대에 걸쳐 친족 간의 혼인을 강행하다가 유전적 기형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결국 대가 끊긴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다양성의 결여는 유전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과거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소위 순혈주의 문화가 만연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문화가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순혈주의의 폐단을 겪으며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서 다양성 관점의 조직 구성과 역할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해 4월, 미국의 국무부는 정부 조직에서 성별, 인종, 학력 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최고 다양성·포용성 책임자(Chief Diversity & Inclusion Officer) 자리를 신설했다. 조직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정부 조직 구성 시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미 국무부 고위직의 84.5%가 백인이라고 한다. 미국의 인구 구성비를 볼 때 충분히 반영된 결과는 아니지만 일단 시도만으로도 고무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부 부처와 국회는 다양한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 것일까? 전 국민의 1%도 채 안 되는 특정 직업·배경 출신의 집단이 소위 능력이란 명분 아래 정부와 국회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통념으로 받아들여 온 능력주의의 함정에 사로잡혀 다양성의 의미를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성이란 능력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다양성이 충분히 고려된 조직에서 능력주의를 반영한다면 조직의 창의성과 성과는 훨씬 나아지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 역시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을 통해 능력주의의 문제점과 오류를 지적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다양성 차원에서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기업은 다양성이라는 목표만을 우선시하여 단순히 기계적인 비율로 조직을 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의 동질적·편향적 구성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양한 관점의 사고와 행동을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 다양성을 통한 기업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시각을 가진 조직 구성을 통해 기업이 당면한 문제와 비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기업 민주주의이다.

기업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기업에 국가나 정치단체 같은 고도의 민주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주의는 필요하다. 많은 CEO(Chief Executive Officer)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독선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CEO의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마치 CEO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라는 착각을 하며 해당 분야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 활동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배제되는 것이다.

셋째, 통념(orthodoxy)을 뒤집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이다.

통념이란 그동안 성공을 가져온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라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통념이 있듯이 기업 활동에도 그것은 항상 존재한다. 기업은 전략, 상품 기획, R&D, 생산, 마케팅, 판매, A/S 등 단계별 활동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며 이윤 창출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각 단계별 활동은 오랜 경험을 통해 매우 익숙하고 최적화된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그것은 종종 통념으로 작용하여 더 나은 방식과 더 높은 목표에 장애가 된다. 코닥(Kodak)이라는 기업의 예를 들어 보자. 아날로그 방식의 카메라가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코닥은 카메라의 최초 상기도(top of mind awareness)로 연상될 정도의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하고도 신상품이 기존 상품을 잠식(cannibalization) 할 것을 우려해 이전의 아날로그 카메라만 고수하다가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아날로그 카메라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다양성을 통한 혁신에 장애가 되었고 결국 파산에 이른 것이다. 오죽하면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다 실패한 경우’를 영어 사전에서 ‘Being kodaked’ 라고 쓸 정도이다. 만일 당시 코닥 사에 통념을 깨는 다양성 문화가 존재했다면 과연 이런 오명을 얻게 되었을까? 뒤에서 또 다른 사례를 통해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 기업을 살펴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수많은 기업 활동 중에서 통념을 찾아낼 수 있을까? 통념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가? 어떤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을수록 통념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업계 전문가들도 믿고 있는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였던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는 아이폰 출시 전 이렇게 단언하였다. ‘아이폰은 499달러라는 너무 높은 가격과 키패드가 없다는 점 때문에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당시 IT업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조차 블랙베리에 대한 강력한 믿음으로 인해 다양성이라는 혁신을 읽지 못한 것이다. 셋째, 뒤집어 생각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있는가? 즉 단순히 통념 깨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렇듯 세 가지 관점에서 통념을 찾는다면 우리는 다양성을 통한 혁신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럼 통념을 깨고 만들어진 새로운 것은 영원불변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저명한 화학자 토마스 미즐리(Thomas Midgley)는 자동차의 노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연 휘발유(1921년)와 냉장고 폭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염화불화탄소(1930년)를 개발하였고, 그것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인류가 발명한 유용한 물질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훗날 각각 납 중독 문제와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 프레온가스(염화불화탄소의 별칭)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다. 한편 꽤 오랫동안 소독용으로 널리 쓰였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는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이란 책을 통해 1급 발암 물질로 밝혀졌다. 1급 발암 물질로 지정되기 전까지 인류는 신체에 기생하는 해충들을 박멸한다는 명목으로 DDT를 온몸에 뿌리거나 방역 소독차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뿜어져 나오는 소독약 연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등 무지에서 비롯된 엽기적인 행위를 즐기기도 했다.


무분별한 DDT 사용
출처: 구글 이미지 1)


   이렇듯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품들은 한동안 성공의 통념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통념을 깬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을 대체한 것을 알 수 있다.
기업 혁신 사례
다양한 구성원 관점의 기업 혁신 사례

제2차세계대전 중 MIT에는 군사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Building 20’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공간에서 무려 9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며 많은 혁신 기술이 개발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이유로 다양성을 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칸막이가 없는 공간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학제 간 경계를 허문 조직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로와 같이 설계된 연구실과 복도 탓에 자신의 연구와 무관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다양성을 통한 통섭(consilience) 차원에서의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연구실은 항상 문이 닫혀 있고 보안이 중시되는 폐쇄적 공간이지 않은가?
   1979년, 미국의 한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던 26살의 패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는 상품 디자인 관련 회의 시 상사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자신과 함께 살고 있던 할머니가 냉장고를 힘겹게 여는 모습을 보고 근력이 약한 노인들이 쉽게 열 수 있는 손잡이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 입장에서 노인들은 수익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통념으로 인해 패트리샤 무어의 의견은 바로 묵살된 것이다. 이에 회의감을 느낀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얼굴에 주름 분장을 한 것에 더하여 물리적 도구를 이용해 눈, 귀, 허리, 다리 등을 실제 노인처럼 불편한 상태로 만든 채, 무려 3년 동안 미국과 캐나다의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토대로 상품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물 끓는 소리가 나는 주전자, 양손잡이 가위와 칼, 저상 버스 등이다. 그동안 그 어떤 기업도 노인의 관점을 기업 활동에 연계하는 다양성이 없었기에 만들지 못했던 것들이다.
   한편, GE Healthcare는 MRI 스캐너의 외관 및 검진 과정을 해적·우주·정글·사파리 등의 주제별 체험 과정으로 새롭게 디자인하였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검진이 아닌 모험의 여정(예를 들면, 배에 올라타 있는 동안 움직이지 않아야 해적들에게 들키지 않는다고 얘기해 주거나 MRI 스캐너의 굉음이 초항속 모드라고 설명)을 안내하였고 항해(검진)를 마치면 검사실 한편의 상자(일명 해적 가슴)에서 작은 보물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어린이들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약품의 도움 없이 MRI 검진을 받을 수 있었고(기존에는 수면제나 마취제 적용 비율이 80%), 병원 측에는 MRI 검진을 받는 어린이 환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여 수익에 도움이 되었다. 이 역시 GE Healthcare가 어린이의 관점이라는 다양성을 통해 이루어 낸 성과이다.

해적선 모양의 MRI
출처: GE Healthcare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상품도 있다. 기존의 스마트 워치들과 확실히 차별화된 고객 가치(customer value proposition)를 담고 있는 세계 최초의 점자 스마트 워치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적으로 음성으로 듣는 시계를 착용해 왔다. 그런데 음성으로 시간을 알려 주다 보니, 강의 시간이나 실내 활동 시 타인에게 불편을 주고 장애 사실도 드러나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점자를 활용한 닷 워치(Dot Watch)이다. 닷 워치는 시계 표면을 터치하면 전기 신호를 통해 돌기가 움직여 점자를 표시한다. 초 단위까지 시간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과 연결하여 전화 및 문자·날씨·뉴스·내비게이션·e-Book·이미지 등을 전부 점자로 바꾸어 수신할 수 있다. 단순히 시간 인지를 넘어 스마트 워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세련된 디자인, 사회적 약자와 공감하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의 니즈 덕분에 비시각장애인들로 고객층이 확대되었다.

점자 스마트 워치
출처: 닷워치


   CJ제일제당은 페닐케톤뇨증(Phenylketonuria)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직원의 아이디어를 수용하여 저단백 햇반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는 단백질 함유량을 일반 햇반의 10% 수준으로 낮추어 선천성 대사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영화, <이터널스>를 보면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다양한 인종의 히어로가 등장한다. 더군다나 주요 히어로 중에는 동성애자도 나온다. MCU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을 잘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디즈니의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들 속 주인공도 과거에 천편일률적이었던 금발의 백인에서 흑인, 아시아인, 라틴인, 성소수자 등으로 다양성을 넓혀 가고 있다.

기업 민주주의 관점의 기업 혁신 사례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에는 신입 사원에 대한 사수(射手) 문화와 위계질서 문화가 존재한다. 이것은 선배들이 체득한 업무 경험과 지식을 빨리 익히도록 하는 장점이 있지만, 일종의 군대 문화와 유사하여 상사에 대한 암묵적인 복종심을 강요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상사의 의견이나 방식이 옳다는 통념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축적된 기업 문화는 의사 결정의 상위층으로 갈수록 더욱 심화한다. 의사 결정권자가 지시한 것은 타당성을 논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따른다. 비록 그것이 잘못된 지시 사항일지라도 타당한 논리와 근거로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최고 의사 결정자가 바뀌면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존의 방향성, 실행 방안, 수행 조직이 폐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조직 문화의 가장 큰 폐단은 구성원들이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맥락적 이해 없이 획일적으로 처리하므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가 결국 기업은 제자리걸음만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하나는 경영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대리인 비용 문제(agency problem)이다. 전문 경영인은 때론 기업의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 목표를, 근본적 문제 해결보다는 표면적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이익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심리 현상이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1963년에 밀그램 효과(Milgram Effect)를 알리며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인간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위자의 부당한 지시에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망각했는지를 알렸다. 안타깝지만 밀그램 효과는 부당함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아직도 많은 조직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세상은 부당한 권위에 순응하는 다수의 사람들보다 그것에 도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더 나아지고 있다.
   그럼 기업 민주주의 관점에서 CEO의 역할은 무엇일까? CEO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CEO는 조직 간 사일로 효과(silo effect)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기능을 조율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배치하여 사업의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일부 CEO들은 마케팅, 개발, 생산, 인사, 홍보 등 각 가치 사슬(value chain) 에 대한 과도한 관여와 세세한 영역에 대한 의사 결정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오류를 범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모든 악기를 연주할 수 없듯이, CEO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기업의 예를 들어 보자. 한때 전통만을 중시하다 매출이 30% 이상 급감하는 위기에 처했던 구찌(Gucci)는 ‘그림자 위원회’(의사 결정이 필요한 중요 사안에 대해 고위 경영진들과 토론 후, 30대 미만의 젊은 사원들의 의견을 듣고 최종 의사 결정하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제도로서 여타 기업들이 운영하는 복지 제도 개선 차원의 위원회와 다름)를 도입하여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이를 통해 한동안 고루하고 그저 따분한 명품 브랜드로만 여겨지던 구찌는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매출은 2017년을 기점으로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35세 이하의 젊은 고객층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명품 브랜드 최초의 온라인 판매 채널 오픈, O2O(Online to Offline) 방식의 구찌 플레이스 구축, 동물의 모피를 이용한 옷 생산 금지 등 그림자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 낸 성과들이 꽤 많다.
   어떤 면에선 기업의 민주주의가 정치나 사회의 민주주의보다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개인 의견을 밝힌다고 해서 생업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만, 기업에서의 위계질서를 벗어난 소신과 행동은 설령 그것이 옳다고 해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 민주주의가 곧 기업의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 민주주의가 앞서 구찌의 그림자 위원회나 EU 기업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 등 꼭 거창한 제도로 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급·직함·나이라는 상하 관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 문화, 누구든 잘못된 것에 대해선 직언하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누구의 의견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고 심어 줄 수 있는 문화, 그것이 기업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최근 직장 내 밀레니얼 세대가 늘어나자 많은 기업들이 수평 문화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캠페인으로만 그치는 것은 왜일까? 기업 민주주의는 CEO와 경영진 스스로 열린 의사 결정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하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처한 현실처럼 기업 내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은 근본적 원인을 꺼내지 않은 채 표면적 원인들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은 재무적 성과를 위해서는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변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생산성 차원에서 다양성이라는 기업 민주주의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가치 사슬의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통념 깨기 관점의 기업 혁신 사례

미국에는 2010년에 설립되어 온라인으로 안경을 판매하는 ‘와비 파커(Warby Parker)’라는 기업이 있다. 와비 파커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그 사업성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다. 심지어 창업자들을 가르쳤던 저명한 경영학자조차도. 하지만 모두의 통념을 깨고 와비 파커는 안경 업계의 넷플릭스라 불리며 현재도 사업을 잘 영위하고 있다. 이 회사는 ‘home-try-on’ 방식을 도입하여 고객이 집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써 보고 살지 말지 결정하도록 하였고, 절감된 오프라인 매장 운영비를 저렴한 상품 가격으로 치환하여 고객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앞서 코닥의 사례를 언급하였다. 이번에는 동종 업계 경쟁사였던 후지필름(Fuji Film)의 사례를 살펴보자. 후지필름의 CEO인 고모리 시게다카(古森重隆)는 전통적인 카메라 필름 사업이 어려워질 것임을 예측하고 기존의 ‘타도 코닥’에서 ‘탈(脫) 필름’으로 전략적 방향을 재설정했다. 특히 자사(自社)의 핵심 역량을 철저히 분석하여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었다. 우선 기존에 자신들이 만들던 필름의 구조와 LCD TV의 편광 필름 구조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TAC(Tri-Acetyl Cellulose) 라는 것을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후지필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스타리프트(Astalift)라는 상품도 개발했다. 아스타리프트는 얼굴의 주름을 방지하는데 효과적인 화장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언뜻 보면 기존의 핵심 역량과 전혀 무관한 상품 같지만 필름의 주성분인 콜라겐이 피부 노화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기존의 핵심 역량을 전이한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제약 산업에 진출하여 아비간(Avigan)이란 약품을 만들었다. 이 약품은 원래 조류 인플루엔자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훗날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면서 제약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약까지 만들 수 있었을까? 후지필름은 수만 가지의 화학품을 다뤄 본 경험을 토대로 제약이 화학 물질과 관련이 깊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후지필름은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할 때, 핵심 역량의 전이라는 다양성을 마치 플랫폼처럼 확장하여 지속 가능 경영을 실현한 것이다.
다양성을 위한 취준생과 기업의 노력
대학이 점점 취업을 위한 도구가 되고 학문 자체의 존귀함을 잃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언론 매체를 통해 문과생(또는 일부 순수 과학 전공자 포함)들은 취업하기 어렵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 입시생들의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는 오랜 기간 IT산업에서 일을 해 온 사람으로서 상당히 왜곡된 것이라 말하고 싶다. 기자들이 현상만 보고 근본적인 원인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이 공대 출신들을 훨씬 많이 선발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공학 출신 지원자의 수적 우세는 제외하더라도 그 지원자들이 꼭 공대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과 관계가 맞지 않다. 채용 인터뷰를 하다 보면 공대생들이 지원 기업과 그 기업이 속한 산업에 대한 지식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문과생들도 해당 기업·산업에 꾸준한 관심과 축적된 지식(코딩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과생들이 취업을 위해 무작정 코딩을 배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선발될 수 있다. 물론 연구·개발 등 특정 업무 영역의 경우 반드시 공학도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신입 사원에 대한 잠재력을 중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공학적 전문 지식을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는 다양한 업무 영역이 존재하며 신입 사원의 경우 대학 전공과 전혀 무관한 업무에 배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론 박사급 인력조차도 연구와 무관한 업무에 배치되는 경우도 많다. 지원자의 잠재력이란 전공 이외의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지원자는 기업이 속한 산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도전을 해야 한다. 그것이 T자형 인재(다양한 소양을 바탕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재)이다. 앞서 언급한 MIT의 학제 간 연구 사례처럼 자신의 전공을 축으로 다양성을 넓혀 가는 것이다. 기업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정 분야 전공자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과 학문적 배경을 가진 지원자를 발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업의 지속 가능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2차전지(二次電池) 소재 관련 한 대기업은 인문·사회 전공자를 선발하여 엔지니어로 성장시키려는 통섭 인재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의 인재 채용과 육성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마치며
우리는 거의 매일 유튜브를 보며 살아간다. 특히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나도 모르게 ‘내가 즐겨 보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자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유사한 성향의 콘텐츠만 보게 되며 점점 다양성을 잃어 가고 있다. 사람들의 확증 편향과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며 때론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한 기욤 샬로(Guillaume Chaslot)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체류 시간에 집중된 추천을 하다 보니, 시청자들을 수많은 가짜 뉴스에 노출되게 하고 그들의 확증 편향을 고착화하여 건전한 민주주의적 사고를 저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필자는 글을 마치며 다양성을 잃지 않기 위해 개인이 노력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본다.
   첫째, 평소의 루틴으로부터 잠시 멀어지기를 해 보는 것이다. 유튜브를 시청할 때, 자신이 믿고 싶은 콘텐츠와 정반대의 입장이거나 관심사와 다른 콘텐츠를 보는 것이다. 평소 즐겨 보는 콘텐츠와 꼭 동등한 비율일 필요는 없다. 두세 번에 한 번이라도 다른 콘텐츠를 시청한다면 유튜브 알고리즘의 노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낯선 길로 다녀 볼 수도 있으며, 늘 사용하던 쪽이 아닌 다른 손으로 양치질이나 빗질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소소한 행동만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다양성 지수를 높일 수 있다.
   둘째, 집단으로서 역지사지를 해 보자.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지금과 다른 성(性)을 가졌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만약 노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만약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앞서 노인 분장을 하고 다닌 패트리샤 무어가 될 필요는 없지만 단 10분 만이라도 다른 집단에 속한 내가 되어 보는 최면을 걸어 보자. 다른 집단 속의 내가 되었을 때도 그동안 주장하던 입장과 동일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떳떳한지 자문해 보자. 특정 집단과 진영에 따라 달라지는 입장이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자. 그것이 내로남불의 악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양성 치료법이다.
   셋째, 모두가 옳다고 믿는 것을 뒤집어 보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는 것이다. 비록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하겠지만 현재의 꼬리가 아닌 미래의 머리를 선택해 보자. 무용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매튜 본(Matthew Bourne)은 근육질의 남성 무용수에게 백조 역을 맡긴 파격을 보여 주었는데, 처음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위대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화가 마네(Edouard Manet)의 살롱 출품작인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년)도 입상 탈락과 함께 역대급 비난의 대상이었다. 당시의 주류를 한참 벗어나 매춘부와 향락을 즐기는 상류층들의 세태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반면 함께 살롱에 출품되었던 카바넬(Alexander Cabanel)의 <비너스의 탄생>은 입상과 함께 나폴레옹 3세가 구입하는 등의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이 두 작품 중 어떤 것을 더 기억하고 있으며 명작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
출처: 오르세미술관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1863
출처: 오르세미술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샘은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내가 책상 위에 서 있는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려는 거야. 어떤 사실을 이미 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도 봐야 해. 비록 그것이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우리는 그동안 무언가를 마주하며 그것을 얼마나 뒤집어 보았을까? 뒤집어 본 그것을 얼마나 실행에 옮겼을까? 혹시 뒤집어 볼 기회는 많았는데 그것을 뒤집을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목차
기업은 왜 다양성이 필요한가?
나의 세상을 부정하는 용기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