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후 시작된 웹툰은 2021년 현재, 그 규모가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초창기 웹툰은 산업이라고 부르기에 턱없이 작은 규모였지만, 현재는 명실상부 콘텐츠 산업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초창기 웹툰은 개인 홈페이지나 온라인 웹진 등 소규모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었지만, 지금은 대형 웹툰 플랫폼을 통해 유료로 거래된다. 카카오웹툰, 네이버웹툰 등 국내 굴지의 대형 IT 기업들이 저마다 웹툰 플랫폼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새롭게 출시된 카카오웹툰은 출시한 지 이틀 만에 거래액 1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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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콘텐츠 지식재산권) 산업에서도 웹툰은 인기가 좋은 미디어다. 국내 유수의 드라마·영화 제작사는 물론이고 해외 영상 서비스까지 직접 국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상물을 다수 제작했다. 영상화 사례가 어느 하나의 장르에 편중된 것도 아니다. 〈유미의 세포들〉(tvN, 2021), 〈미생〉(tvN, 2014), 〈경이로운 소문〉(OCN, 2020-2021), 〈이태원 클라쓰〉(jtbc, 2020) 등의 작품만 살펴보더라도, 로맨스부터 드라마(극서사)·SF에 이르기까지 영상화 되는 작품의 장르가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웹툰 통계를 제공하는 웹툰 미디어 웹툰 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현재까지 웹툰의 작품 총수는 완결작을 포함해 5만여 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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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디지털 전송권 만료 등에 따라 더이상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작품까지 따지자면 그보다 훨씬 작품 수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웹툰 작품은 대체로 학원물/로맨스/무협/액션/판타지/공포/호러 등 다양한 장르에 두루 포진해 있지만, 플랫폼의 특성에 따라 장르가 편중된 경우도 있다. 예컨대 네이버 웹툰에는 학원물 작품이 많고, 카카오페이지에는 로맨스 판타지 작품이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웹툰 내 장르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 편이다.
웹툰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에 대한 독자와 시장의 반응이 빠르게 확인되고 또 반영된다는 것이다. 대형 웹툰 포털에 새로운 작품의 연재가 시작되고 나면, 같은 요일 연재작 가운데 랭킹이 매겨져 순위를 손쉽게 판가름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별점 평균, 댓글 수 등 다양한 정량적 지표를 통해 개별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빠르게 수집되고 손쉽게 확인될 수 있다.
정량적 지표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정성적 반응 역시 댓글난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웹툰 〈복학왕〉은 2020년 8월 〈광어인간〉 에피소드에서 여성 캐릭터 ‘봉지은’이 마치 성관계를 통해 회사에 입사한다는 듯한 장면을 그려 독자들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오만 명에 육박하는 이용자들이 해당 회차의 에피소드에 접속하여 별점을 매기고 작품을 비판하는 댓글을 게시했다. 이에 네이버웹툰과 〈복학왕〉의 작가 ‘기안84’는 사과 공지를 올리고, 해당 장면을 수정한 바 있다. 이와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웹툰 〈고수〉는 사부의 원수들을 죽이기 위해 오랜 시간 동굴에서 수련하다 나온 ‘강룡’이 주인공인데,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니 이미 사부의 원수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미 원수들이 죽어 허망하게 목표를 잃어버린 강룡에 대해 일부 독자들이 ‘언제 원수에게 복수하러 가냐’고 댓글로 항의하자, 작가들은 이를 작품에 반영해 시나리오를 선회하기에 이른다. 프롤로그에 이미 다 그려져 있는 설정 자체를 뒤튼 것이다. 독자는 작품에 댓글을 남기고, 작가들은 이 피드백을 작품에 반영한다.
또한 웹툰은 독자들의 피드백에 빠르게 반응하는 만큼, 사회적 흐름과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체다. 뒤에서 상세히 다룰테지만,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의 원년이라 불리는 2015년 이후 여성서사 웹툰이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도 그 예 중 하나이다. 2015년 다음 웹툰에서 20대 비혼 청년 여성인 ‘이시다’를 주인공으로 20대 여성의 노동과 주거, 삶에 대해 풀어낸〈혼자를 기르는 법〉(김정연, 다음웹툰)은 연재 당시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웹툰 플랫폼이 아닌 개인 SNS에서 기혼 여성의 결혼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웹툰 〈며느라기〉(수신지)는 SNS 웹툰 최초로 ‘오늘의 우리만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웹툰 산업 안에는 웹툰이 소비되는 현 시대상과 계속하여 접합하며 창발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유의미한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그저 서사 측면에서만 새로운 게 아니라, 주제와 연출 등 다양한 각도에서 유의미한 실험을 해낸다. 주연과 조연이 맺던 관계성을 비틀어 새로운 관계적 구도를 만들어 내고, 기존의 클리셰(cliché)를 깨부순다. 또한 지금까지 만화의 주인공으로 서 본 적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늘 비치던 각도가 아닌 새로운 구도에 캐릭터를 세운다.
많은 장르의 작품이 새로운 시도를 해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제적 다양성을 견인해 온 건 생활툰이다. 생활툰은 특히 웹툰의 탄생과도 함께했던 장르다. 생활툰의 주인공은 대개 작가의 페르소나를 반영하는데, 이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일상의 결을 보여준다. 일상은 모든 사람이 영위하는 단순하고 평범한 서사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정치적인 내러티브가 되기도 한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는 이렇게 썼다. “외관상 빈약한 일상성의 밑에 숨겨진 풍요로움을 폭로하는 일, 경박성 밑에 깔린 심오함을 드러내는 일, 정상의 비정상성을 꿰뚫어보는 일, 이것들은 모두 노동자의 생활에 근거를 둠으로써만, 그리고 노동자의 창조력을 부각시킴으로써만 분명해지고, 또 진실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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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르페브르는 노동자의 일상을 맑스주의의 연장에서 정치적 실천이 가능한 공간으로 보았다. 그의 이 같은 표현은 생활툰과도 관련이 깊다. 생활툰은 일상 속의 ‘경박성 밑에 심오함’을, ‘정상의 비정상’을 꿰뚫어 그를 공론장으로 내보이는 장르다. 생활툰은 대개 귀여운 그림체와 소소한 일상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소수자들의 일상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감각을 일깨워낸다. 사회를 이루는 이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일상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사회적인 의미를 길어 올리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생활툰에서 자전서사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며, 주요 작품들을 통해 생활툰이 확장한 세계의 모습을 탐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