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은 정확할수록 문제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1996년 10월 중순 시카고에서, 나와 내 아내의 첫아이가 태어났다. 사랑하는 큰아들 서영이다. 너무나 기쁘고 감동스러웠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하지만 먼 타국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육아에 대해 가르쳐줄 사람도 없는 젊은 초짜 부부에게는 서영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모든 일이 당황스러웠고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읽었거나 주변에서 주워들은 수많은 얘기들에 근거해 서영이를 키웠다. 그때 준비되지 않은 부모로서 저지른 많은 실수를 생각하면, 지금도 서영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서영이가 태어나고 몇 개월이 지난 시카고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서영이에게 분유를 먹이던 아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서영이의 첫 이가 나오는 것 같다며 감동하고 있었지만, 왠지 아내의 목소리는 매우 걱정스럽게 들렸다. 왜 그러냐며 서영이의 입을 들여다보는 내게, 아내는 나오고 있는 서영이의 첫 이가 가운데 아랫니가 아니라 윗니 중 송곳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아기들의 첫 이는 아래쪽 앞니 두 개부터 난다고 알고 있던 나와 아내는, 위 잇몸의 송곳니 자리에 보이는 하얀 무언가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며칠 뒤 서영이의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을 찾은 우리 부부는 서영이의 주치의(경험이 많은 50대 중반의 미국인 소아과 의사)에게 서영이의 첫 이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가운 표정을 짓는 의사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송곳니부터 나는 것 같다”라고. 의사는 약간 의아해하며 아이의 입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다시 반가운 얼굴로 돌아와서 송곳니가 나는 게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와 내 아내는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의사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송곳니부터 나오는 것이 정상인지, 그리고 괜찮은지를. 그랬더니 그 미국인 의사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정상이다. 걱정할 것 전혀 없다”라고.
   그제야 안심한 나는 밝게 웃으며 의사에게 다음과 같이 확인 질문을 던졌다. “이런 아기들이 가끔 있는 모양이죠?”라고. 그랬더니 그 의사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나는 황당한 나머지 화를 내며 의사에게 당신 같은 의사가 처음 보는데 왜 정상이라 했느냐고 따져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내게 되물었다.
   “왜 송곳니부터 나오면 안 되는데?”
   나는 한동안 말을 못 했다. 송곳니부터 나오면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제정신 1) 중, 일부 중략 및 수정)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아이의 첫 이가 나오는 순서에서부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순서, 심지어 그 아이가 늙어서 죽어가는 과정의 모든 것들에 대한 당연한 믿음이 있다. 단지 아이의 일생을 넘어 그 아이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 그 아이의 부모가 서로 만나는 순간부터 아이를 가지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고 보살피는 거의 모든 인간의 영역에서 우리는 ‘반드시 ~ 야 한다’와 ‘당연히 ~이 옳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따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믿음들에 대해 왜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그 질문에 논리적인 근거를 댈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아이의 첫 이가 아래 앞니부터 나온다는 믿음처럼.
은하계가 이 정도는 생겨야지?
우리의 많은 믿음은 과거에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이유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는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 단지 그렇다는 ‘is’를 잘못 해석해서 ‘ought’로 이해하고, 그것이 옳고 동시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게 된다. 이러한 믿음을 철학과 심리학에서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 2) 실제 심리학에서 실험 연구를 통해 현재가 그냥 그렇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그 정보를 그래서 좋다, 옳다, 바람직하다는 가치를 부여한다는 현상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한 심리학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은하계(galaxy)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은하계는 항성들과 먼지, 가스 등이 서로 중력에 의해 묶여있는 군집이며, 그 모양은 그 중력 중심의 위치와 주변의 다른 은하계 등의 영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NCG 4414’라는 은하계의 형태 그림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은하계의 이름과 모양은 그냥 컴퓨터에 의해서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정보와 함께 실험 처치가 이루어졌는데, 전체 은하계 중에 약 40% [실험 조건에따라 60%, 80%]가 NCG 4414의 형태와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은하계의 미학적 측면을 물었다. 얼마나 보기에 근사한지,그 은하계를 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든 은하계가 얼마나 그런 모습을 띠어야만 할지 등을 물어본 것이다. 연구결과는 본질주의적 오류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의 미학적 평가는 40%보다는 60%의 조건에서, 그보다는 80%의 조건에서 더 긍정적이었다. 즉 그런 은하수가 더 많을수록, 일반적이라고 들었을 때, 그 은하계가 더 보기 좋고 다른 은하계도 그렇게 생겨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3)
   일반적으로 최근의 사회인지심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이 많은 착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착각의 주요 원인으로 사람들이 확률적 정보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주장도 근거가 있고 그것을 지지하는 연구결과도 무수히 많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사실 타고난 확률 전문가이자 통계 전문가이다. 결코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을 기억에 저장하고 그 빈도에 대한 대략적인 통계를 계산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어떤 일이 얼마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특정 조건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 확률을 자연스럽게 알아챈다. 결혼 후에는 배우자의 표정을 살피며, 그런 표정을 지을 때 배우자의 심리 상태나 원인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추론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더 위험하고 언제 피해야 하며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예측 가능성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 편안함은 다양한 긍정적인 심리적 상태와 연결될 수 있다. 반면에 이런 자신만의 믿음과 기대에서 벗어나는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긴장과 불안, 부정적인 심리적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은 쭉~ 그래왔던 것들과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 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다양성을 trade-off?
본질주의적 오류의 근거가 되는 세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is’ 정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직간접 경험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믿음들은 보통 일반화, 변별, 범주화 등의 과정을 거쳐 축약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처음 개를 봤을 때 부모에게 묻는다. “저건 뭐야?” 부모는 “개야”라고 알려 준다. 아이가 또 다른 개를 봤을 때 부모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저건 뭐야?” 부모는 “저것도 개야”라고 알려준다. 이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아이는 개에 대한 정보를 배운다.
   물론 처음 고양이를 봤을 때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저것도 개야?” 그럼 부모는 알려준다. “아니, 저건 고양이야.”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비슷하게 생긴 동물을 개로 일반화하고 고양이와 구분하는 변별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결국 개라는 범주(category)에 대한 지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후에도 진짜 개처럼 생긴 고양이나 고양이처럼 생긴 개를 만날 때, 아이는 여전히 헷갈릴 수 있다. 요즘은 개의 친화성을 가진 고양이를 개양이라고 부르는 시대이니, 헷갈릴 가능성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성격, 태도, 생각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4) 그 사람의 수많은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 행동들 중에 일관성을 발견하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심리적 개념을 그 사람에게 부여하게 된다. 상황과 대상에 상관없이 한결같이(물론 인간이 실제로 100% 한결같을 수는 없다) 특정 행동을 하는 일관성이 발견되면 그건 성격으로 설명한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항상 신경질을 내는 사람에게는 ‘성격이 지랄 같다’라고 얘기한다. 반면에 다른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은데 나한테만 신경질을 낸다면, 그건 성격이 아니다. 이렇게 특정 대상에게 나타나는 행동의 일관성은 보통 ‘태도’로 설명되는 것이 적절하다. 그냥 날 싫어하는 것이다. 타인이 날 싫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성격이 안 좋다고 믿을 것이다. 그래도 된다. 어차피 성격이나 태도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의 인성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은 보통 이렇게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이렇듯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고정관념적인 성향을 띠고 불확실성을 내포하게 된다. 아무리 완벽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도 일반화와 범주화의 과정에는 정보의 손실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일상과 사회심리학에서 고정관념은 한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되고, 고정관념에 근거해서 우리가 행동한다는 것은 그 믿음을 그 집단 전체의 구성원에게 과일반화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정관념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한 개인에 대한 개별적 정보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한 범주 정보의 충돌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믿음과 지식은 어느 정도 고정관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봐온 개를 바탕으로 ‘개’라는 범주를 구성할 때,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개의 서로 다른 세부 특성이 모두 포함되지 않는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개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를 볼 일도 없으니 그 미지의 개들에 대한 정보 또한 포함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몇 살이건 어떤 삶을 살아왔건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범주 ‘개’는 엄청난 세부 정보가 손실된 하나의 고정관념 같은 지식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미래에 어떤 개를 보고 놀랄 수 있다. 크기가 말만 한 개를 만났을 때(실제 수년 전에 미국에서 거의 망아지만 한 개를 본 적이 있다)나 거의 종을 알 수 없게 생긴 동물이 개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여전히 놀랄 여지가 있는 것이다.
   타인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지식도 어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적믿음이다. 개별적인 행동들에는 그 내용과 형식, 조건과 요건들에서 엄청난 다양한 측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 일관성을 발견하고 그 축약된 일관성으로 그 행동들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규정한다. 그 정보를 근거로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기대하고 대응하며, 그 예상과 다른 행동을 관찰하면 놀라기도 한다. 따라서 의미화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단편적 사건과 행동들, 완전히 새로워서 그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단일한 존재나 개체 등과 그에 대한 일회성 기억(episodic memory)을 제외한 우리 머릿속에 있는 대부분의 지식과 믿음은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정보 손실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가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얻는 대부분의 믿음과 지식은 결국 얻는 게있으면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의 속성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언어발달의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언어권의 기본 소리(음소) 의 구성을 습득하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권에는 없는 기본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태어날 때는 가지고 있었던)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이. 그리고 이런 현상은 다른 언어권의 소리는 결국 자신의 모국어의 소리 범주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보고되었다. 5) 결국 그 안에 내포된 수많은 다양성 정보를 손실하는 대가로 우리는 그 범주에 근거한 범주 지식을 얻고 그것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내의 교육과 조직문화에서 다양성 가치를 구현하려는 고려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다양성 현황과 인식을 조사하여 최근에 『고려대학교 다양성 보고서 2019』를 발간했다. 교내 단위별 구성원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아보는 다양성 지수도 보고되었다. 이 다양성 정도를 추론하기 위한 지수를 계산하는 과정도 결국 <표 1>과 같은 정보의 군집화와 일반화, 변별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세부 정보들이 손실된다. 그래야만 의미가 추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정보도 손실되지 않은 6,122명에 대한 개별 자료는 완벽하지만, 결국 그 자료의 나열은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게 된다.

표 1. KU 다양성 지수 산출을 위한 구성원 집단별 요소

출처: 고려대학교 다양성 보고서 (2019)


   그럼 그 세부 정보를 잃으면서 그 고정관념적인 범주 정보에 의존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원래 고정관념은 죄가 없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가 있는 구법관 4층에는 남성 화장실이 없고 여성 화장실만 있다. 남성 화장실은 1층과 2층에만 있다. 4층에는 주로 심리학과의 연구실과 실험실이 위치하는데 화장실이 들어갈 공간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심리학의 특성상 4층에 있는 실험실에서 밤늦게까지 실험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학생들과 여성 교수님들의 안전과 보안을 고려해서 4층 화장실은 여성 화장실로 오래전에 바뀌었다고 한다.
   외부에서 찾아온 남성 손님은 4층에서 화장실을 찾다가 잠시 당황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화장실을 찾는 남성 손님을 아주 자연스럽게 2층으로 안내한다. 굳이 어떤 화장실을 가기를 원하냐고 묻지 않는다. 왜? 남성은 남성 화장실을 가고 여성은 여성 화장실을 가는 것이 당연하니까. 고정관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물론 이런 고정관념은 유럽에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여지없이 깨졌다. 여행길에 들른 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은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었다. 한국에도 일부 낡고 작은 건물에 남녀 구별을 하지 않는 공용 화장실은 있지만, 보통 남성과 여성이 함께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유럽 휴게소의 화장실은 엄청난 규모에 최신 시설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개의 화장실로 나누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했지만 모두 양변기로 구성되어있었고 남녀 구분이 없었다. 다른 양변기 칸막이의 문을 열고 나온 여성과 함께 거울로 서로를 쳐다보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남녀 화장실에 대한 이런 강한 신념은 언제 어떻게 생긴 걸까? 언제 누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얘기해 준 것 같지는 않다.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손을 따라 그냥 아무 화장실이나 들락거렸을 것이다. 아마 어느 순간부터 불편함을 느꼈을 거고, 여성 화장실로 데리고 가려는 어머니의 손을 격렬히 뿌리치며 저항했을 것이다. 그 후로 화장실에서 여성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변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의 경험은 화장실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그 이후로 화장실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되고(화장실을 더 자주 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새로운 곳에 가면 화장실을 찾아갈 때 더 잘 살피고 조심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역설적으로 고정관념의 기능을 보여준다. 고정관념은 우리의 인지적 자원을 아껴주는 가장 효율적인 심리 기제(energy-saving device)이다.
   인간은 일상에서 수많은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도 동시에. 대학원생들은 교수와의 식사 자리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동시에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표정을 살피고 식사 후에도 자신을 붙잡을 교수를 피해서 자신만의 커피 타임을 즐길 명분을 생각해내야 한다. 이들 중 상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덜 중요한 사안은 쉽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런 모든 정보처리는 인지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신체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이다. 그러니 정보의 신속하고 단순한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고정관념은 정보처리에서 매우 필수적이다.
   고정관념은 일반적으로 범주와 관련된 정보가 도식적(schematic)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범주에 대한 단서에 노출되자마자 자동적으로 관련 정보가 활성화된다. 이 과정은 대부분 자동적인 정보처리의 특성을 가진다. 그 정보처리 과정이 의식의 영역 밖에서 일어나고(unconscious),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그 정보처리 과정을 시작할 수도 없고(unintentional) 멈출 수도 없다(uncontrolable). 결과적으로 이런 정신 과정은 최소한의 인지적 자원을 사용하므로 매우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efficient). 6)
   실제 Bodenhausen과 동료들은 이런 고정관념의 기능을 이중과제 패러다임(dual-task paradigm)을 통해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연구 참가자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화면에 주어지는 특정 인물에 대한 특성 정보(예, caring, creative, dishonest 등)를 보고 그 인물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인도네시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들었다. 참여자 절반에게는 특성 정보와 함께 그 대상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 정보(현재 직업 정보: 의사, 예술가, 부동산 중개사 등)가 주어졌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특성 정보만 주어졌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정관념 정보가 주어진 조건에서 참여자들은 특성 정보에 대한 기억 과제를 더 잘 수행했고 인도네시아에 대한 객관식 문제도 더 정확하게 풀었다.
   이 결과는 고정관념 정보가 그 정보를 적용하는 대상 인물에 대한 정보처리뿐만이 아니라 높은 효율성으로 여유로워진 인지적 자원을 이용하여 다른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도와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제의 종류를 다르게 한 연구들에서도 관찰됐으며, 심지어 그 고정관념 정보를 식역하 자극(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형태; 컴퓨터 스크린에 15ms 정도로 짧게 노출하여 연구 참가자가 무엇을 봤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자극)의 형태로 제공해도 발견되었다. 7)
고정관념에 대한 고정관념?
고정관념의 인지적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고정관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부정적이다. 흔히 한 개인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가 그가 속한 범주에 대한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으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는 각자의 고유한 개인정보에 근거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회적으로 고정관념에 의한 평가나 판단을 규제하는 법률과 제도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고정관념과 같은 범주 정보는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치 ‘겉보다 속을 보라’는 격언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이 겉을 보는 것이 더 자동적이고 쉽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반대라면 ‘겉도 좀 봐라’라는 격언이 생겼을 것이다.
   범주에 대한 고정관념은 의식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일반적으로 고정관념 정보에 자세한 정보가 생략되어 있고 지나치게 일반화되어 고정관념에 근거한 판단과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또한 고정관념적 정보처리가 자동적이다 보니 관련 정보처리에 대한 동기가 낮을 때나 인지적 여력이 없을 때에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고정관념이 다양한 착각과 오류와 연결되어 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을 두고, 고정관념에 의존해서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 마치 일부러 잘못된 판단이나 평가를 하려는 동기이거나 고의로 오류를 일으키는 것으로 결코 해석하면 안 된다. 이 세상에 일부러 잘못된 판단을 하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정관념적 정보처리와 그런 정보처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은 1980년대 사회인지심리학에서 유행했던 인지적 절약자(cognitive miser) 관점에 어느 정도 근거한다. 사회인지심리학에서는 시대에 따라 정보처리자로서의 인간을 보는 관점이 계속 변화해왔다. 8) 1970년대에 유행했던 순진한 과학자(naive scientist) 관점은 인간을 마치 컴퓨터와 같이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정보처리의 정확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존재로 보았다. 물론 인간에게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인간의 정보처리가 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연구결과는 큰 반작용을 불러왔다. 그래서 인간은 합리성이나 논리성은 별로 관심이 없고 인지적 에너지의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존재라서 웬만하면 정보처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믿는 인지적 절약자 관점이 나왔다. 이런 관점에 딱 들어맞는 개념 중 대표 주자가 바로 고정관념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고정관념 정보가 주어지면 각 개인에 대한 고유 정보가 주어져도 고정관념을 더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고정관념을 쓰지 말라고 해도 그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마치 정보처리를 하기 싫어하고 더 나아가 올바르거나 정확한 판단이나 평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존재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한 정보처리자도 분명히 아니지만, 결코 틀려도 상관없거나 일부러 틀리려고 하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항상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려고 한다(그렇게 스스로 느낀다). 인간의 정보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 중 하나가 바로 정확한 이해의 욕구(need for accuracy 또는 comprehension goals)이다. 9) 타인에 대한 판단을 할 때, 고정관념에 의존하건 개인의 고유정보를 사용하건 모두 그 타인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정보처리이다. 설사 고정관념에 의존하더라도 일부러 잘못된 정보처리를 하려는 고의성은 절대 없다. 본인은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 한다고 믿고 실제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히려 인간은 정보처리 전략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주제의 중 요성, 정보처리 동기, 가용한 인지적 자원, 정보의 관련성/적합성 등에 따라 어떤 정보처리 전략이 선택되느냐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물론 이런 선택의 과정은 대부분 무의식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메타인지(meta- cognition)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인간에 대한 이런 접근이 동기적 전략가 (motivated tactician) 관점이다. 10) 때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매우 높은 수준 의 확신(confidence)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고정관념이건 개인 고유정보이건 상관없이 가능한 모든 정보를 더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에 판단에 대해 쉽게 확신이 드는 경우라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낮은 수준의 정보처리 전략 을 추구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단편적인 정보이건 고정관념 정보이건 상관없이 그냥 그 낮은 확신 기준만 충족시키면 정보처리는 끝날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판단 기준으로서 확신 수준이 낮은 경우에는 자동적인 고정관념에 의한 정보처리가 더 큰 영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고정관념과 다양성
범주에 근거한 고정관념적 속성이 많은 지식과 믿음의 본질적인 측면이고, 의미 추론과 같은 정보처리에서 수많은 세부 자료와 다양성 정보가 상실되는 것이 필연적이며, 고정관념적인 정보처리가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들이 고정관념에 기반한 정보처리를 정당화하거나 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설적으로 고정관념적 정보처리의 필연성과 매력이 그 위험성을 보여준다. 직간접 경험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정관념과 같은 범주 정보들이 모두 근거가 없거나 다 틀렸을 리는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다는 연구들도 보고되고 있다. 11) 개념적으로도 고정관념에 근거한 정보처리가 과일반화, 즉 그 범주의 모든 구성원에게 다 적용시키려한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 그 범주의 고정관념에 해당하는 구성원이 없거나 소수라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현실에서 고정관념적인 정보처리가 결국 정확한 판단이나 결과를 이끌어서 강화(reinforcement)되는 경우도 매우 흔하고, 심지어 일부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그것이 맞는 경우가 틀린 경우보다 더 흔할 수도 있다. 따라서 ‘특정 범주에 대한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주장은 ‘그 고정관념이 맞다’는 주장만큼이나 근거가 없을 수 있고 논쟁의 여지를 가진다. 흥미로운 것은 범주 안에 있는 다양성을 무시한다는 과일반화 측면에서는 두 주장이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고정관념과 관련된 사회적 논쟁이 소모적인 갈등으로 발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대한 많은 사회심리학 연구들은 고정관념이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얼마나 왜곡시키고 편향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현실에서도 고정관념과 관련된 많은 갈등은 집단에 속한 한 개인이 자신은 그 집단의 구성원과 다르며 그런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은 자신을 향한 판단이나 평가가 틀렸고 그래서 부당하다는 인식에서 흔히 시작된다.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실제 수많은 연구들이 도식적인 역할을 하는 고정관념은 자동적으로 활성화되어 뒤따르는 판단, 평가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 12) 하지만 그 많은 연구의 대부분은 그 부정적인 영향 자체보다는 그런 고정관념이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기제를 밝히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를 위해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주어진 정보에 근거해서 규범적(normative) 정답과 그렇지 않은 오답을 명확히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판단 과정을 확인하는 형태의 연구를 진행한다. 따라서 실험실에서는 잘못된 고정 관념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한 틀린 편향 등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하지만 일상에서 특정 대상에 대한 판단과 평가, 행동이 어떠해야 정확한 건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고 실제 존재하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현실에서 고정관념때문에 판단이나 행동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13)
   더구나 이미 위에서 논의했듯이 일부러 틀린 판단을 하려는 사람은 없고 고정관념에 의해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그 순간에 느끼면서 그렇게 할 사람도 별로 없다.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건 안 받건 그 모든 정보처리는 (최소한 의식적으로는)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확신이 들었기에 내린 판단과 결정이 고정관념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인간도 없다. 그러니 고정관념의 타당성 여부나 그로 인한 판단의 정당성의 문제로 고정관념의 문제를 한정시키면 현실적으로 사실 답이 없다.
   오히려 고정관념적 정보처리의 문제는 범주에 대한 고정관념 내용의 타당성 여부가 아닌, 그 구성원 개인에게 고정관념을 무분별하게 적용시키는 과일반화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서 고정관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다양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고정관념적 정보처리에서 외집단 동질성(outgroup homogeneity)의 역할은 고정관념이 다양성 인식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오래전부터 명확히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내집단(ingroup)보다 외집단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낮게 지각하고 상대적으로 외집단을 동질하게 지각하는 현상이 있다. 14) 실제로 외국 사람들을 보면 다 비슷해 보여서 누가 누구인지 잘 구분을 못 한다.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비슷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외집단 동질성은 고정관념을 그 집단 구성원들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집단에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고정관념은 스스로 그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그 자체로 죄가 없다.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정보처리에서는 필수적이다. 타당성이 높은, 즉 그 집단의 구성원 중에 고정관 념의 내용에 해당하는 정도와 비율이 높은 고정관념은 더욱 그렇다. 문제는 이런 타당한 고정관념일수록 우리로 하여금 더 본질주의적 오류에 빠지게 한다. ‘반드시 ~야 한다’, ‘당연히 ~이 옳다’라는 생각은 그 믿음이 타당할수록 강할 수밖에 없다. 마치 더 많은 은하계의 모습이 비슷할수록, 모든 은하계는 그렇게 생겨야만 할 것 같은 그 느낌이 들듯이. 그래서 원래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는 오히려 본질주의적 오류를 상대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성이 더 많은 다양성을 이끄는 선순환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우리 사회와 우리의 머릿속은 어떠할까? 선순환? 아니면 악순환?
목차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입니다
고정관념은 정확할수록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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