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나 언론, 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들의 사진을 보며 참가자 구성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긴지 꽤 되었다. 일렬로 죽 늘어선 사진 속 참가자들이나 포스터의 연사들이 전부 남성일 경우가 여전히 꽤나 많고, 그런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주관하는 국제정치 콘퍼런스에 여성 연구자들이 초청되지 않는 현상을 거론한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의 신문 칼럼이 생각난다. 그는 초청할 만한 국내외 여성 전문가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우리나라에 편만한 남성위주의 전문가 네트워킹을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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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정부나 지자체 행사에서 남성일색으로 연사를 구성하여 지적 받는 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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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문제인가, 전문가들이 모두 남성이어서 그런 건데’라는 주최측의 볼멘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술행사나 전문가 포럼의 경우, 주최측이 ‘여성’전문가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노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2020년 노벨상 위원회는 과학분야에서 3명의 여성 수상자를 발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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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발견한 공로로 안드레아 게즈에게 물리학상이, 유전자 염기서열을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찾아낸 공로로 엠마누엘 샤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에게 화학상이 수여되었다. 거기에 더해 문학상도 미국의 시인인 루이제 글뤽에게 주어졌다. 여성 수상자가 희귀했던 노벨상의 문화가 근래에 들어 바뀌기 시작하며,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반가운 이유는 여러가지다. 먼저, 여자들은 수학이나 과학을 못 한다는 오래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이러한 편견 속에서 진로를 찾아가는 여학생들이 이들 수상자를 보고, 자신들도 최고 수준의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과학이나 발명에 약하다는 편견은 워낙 뿌리가 깊어, 드러난 성취와 업적의 기여도를 따질 때 여성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빈번해 왔다. 여성은 남성 리더를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전통적인 사회관이 팽배한 상황에서, 여성의 공로는 마땅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묻히게 마련이다. 상사나 스승, 또는 동료와의 공동연구에서 업적의 공로는 당연히 남성 동료나 상사에게 돌려져 왔다. 공동연구에서 여성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편견은 19세기 미국의 발명가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마틸다 게이지의 이름을 빌려 ‘마틸다 효과’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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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벨상의 변화를 보며 마틸다 효과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학술 행사나 전문가 포럼의 연사에서 과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성별과 인종, 연령과 스타일이 다른 다양한 얼굴들이 어우러져 전면에 나서는 행사가 멋진 행사라는 판단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기를 바라며 연구생태계에서 다양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