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가치로
풀어낸 가능성
연구생태계에서 다양성이 가지는 의미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학계나 언론, 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들의 사진을 보며 참가자 구성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긴지 꽤 되었다. 일렬로 죽 늘어선 사진 속 참가자들이나 포스터의 연사들이 전부 남성일 경우가 여전히 꽤나 많고, 그런 사진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주관하는 국제정치 콘퍼런스에 여성 연구자들이 초청되지 않는 현상을 거론한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의 신문 칼럼이 생각난다. 그는 초청할 만한 국내외 여성 전문가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우리나라에 편만한 남성위주의 전문가 네트워킹을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다. 1) 최근에도 정부나 지자체 행사에서 남성일색으로 연사를 구성하여 지적 받는 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 ‘그게 무슨 문제인가, 전문가들이 모두 남성이어서 그런 건데’라는 주최측의 볼멘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술행사나 전문가 포럼의 경우, 주최측이 ‘여성’전문가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노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2020년 노벨상 위원회는 과학분야에서 3명의 여성 수상자를 발탁하였다. 3)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발견한 공로로 안드레아 게즈에게 물리학상이, 유전자 염기서열을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찾아낸 공로로 엠마누엘 샤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에게 화학상이 수여되었다. 거기에 더해 문학상도 미국의 시인인 루이제 글뤽에게 주어졌다. 여성 수상자가 희귀했던 노벨상의 문화가 근래에 들어 바뀌기 시작하며,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반가운 이유는 여러가지다. 먼저, 여자들은 수학이나 과학을 못 한다는 오래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이러한 편견 속에서 진로를 찾아가는 여학생들이 이들 수상자를 보고, 자신들도 최고 수준의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과학이나 발명에 약하다는 편견은 워낙 뿌리가 깊어, 드러난 성취와 업적의 기여도를 따질 때 여성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빈번해 왔다. 여성은 남성 리더를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전통적인 사회관이 팽배한 상황에서, 여성의 공로는 마땅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묻히게 마련이다. 상사나 스승, 또는 동료와의 공동연구에서 업적의 공로는 당연히 남성 동료나 상사에게 돌려져 왔다. 공동연구에서 여성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편견은 19세기 미국의 발명가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마틸다 게이지의 이름을 빌려 ‘마틸다 효과’라 불리기도 한다. 4) 최근 노벨상의 변화를 보며 마틸다 효과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학술 행사나 전문가 포럼의 연사에서 과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성별과 인종, 연령과 스타일이 다른 다양한 얼굴들이 어우러져 전면에 나서는 행사가 멋진 행사라는 판단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기를 바라며 연구생태계에서 다양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서울대 다양성위원회의
경험과 이슈
2019년 고려대에 다양성위원회가 생겼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들은 아마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사람들일 것이다. 고려대는 서울대와는 다른 궤적을 통해 위원회가 설립되었지만, 교수들이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다양성 가치를 구현하는 학내 기구를 만들고 변화를 추구하는 신기한 현상이 여러 대학으로 퍼져 갈 수 있음을 보여준 확실한 사례였다. 서울대학교의 다양성위원회는 여교수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되었다. 2015년 여교수회 회장이던 내게 전임 회장단이 정책과제 보고서 하나를 넘겨주었다. 5) 보고서 저자들은 15-20년 전 서울대의 학부 여학생 비율을 현재의 여교수 비율과 비교하고, 여교수들의 임용이 가용자원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지적하며, 학교가 여교수 임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선진국의 대학들이 양성평등의 문제를 다양성과 공정성의 가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제시하며, 서울대도 다양성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제안된 내용을 구현하기 위해 여교수회는 당시 성낙인 총장께 포용성과 다양성을 증진시킬 기구의 설립을 요청하였고,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학칙에 근거한 최초의 총장직속 자문기구로 다양성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들은 교무처장, 학생처장, 기획처장과 교수협의회 회장, 여교수회 회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외국인교수와 학생, 직원, 외부전문가들을 포함한다. 처장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다양성위원회에서 제안된 사항들을 학내행정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다. 각 단과대학마다 부학장과 직원 한 사람씩을 담당자로 지정하여, 위원회와 연결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자신의 연구 분야가 다양성과 연관되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다양성 지도교수단도 위원회와 연결되어 있다.
   다양성위원회는 다양성보호와 증진을 위한 연구, 조사와 정책개발, 다양성 관련 현황과 개선 실적에 대한 연례보고서 발간, 다양성 가치의 소통과 확산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중 다양성 보고서의 발간은 그동안 학교 공식통계에서 벗어나 있던, 다시 말하면 “보이지 않았던” (가려졌던) 영역의 학내 구성원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구성원들을 성별의 관점에서 조망해보는 차원과 함께, 국적, 직위, 직무의 종류와 안정성, 출신학교, 장애여부 등 여러 차원에서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덕분에 내 개인적으로는 여교수와 여학생 집단에 대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관심의 폭이 비전임 교수들과 연구원들, 대학원 과정을 수료한 연구생들, 한국에 정착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들,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로 점차 확대되는 개안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에서 캠퍼스생태계, 연구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원들이며 상대적으로 과소대표된(under-represented) 집단이자 개인들이다.
   자신들이 주류가 아닌 비주류라서 자신들의 의견이 경청 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여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개개인의 능력도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미래를 열어갈 인재를 길러내고 창조적인 연구로 국가와 인류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대학의 목표는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함께 협업할 때만이 달성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는 대학의 생태계에서 과소 대표된 집단들을 중심으로 현황과 문제점, 개선방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가파른 경력사다리
우리 사회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커져서 이제는 양성평등이 거의 달성되었고, 남성들이 오히려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드러내고 말은 못하더라도 ‘우는 암탉’에 대한 못마땅함과 걱정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여학생이 반장을 맡거나, 그룹 활동의 리더가 되는 것이 초중등학교에서는 이제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 되었지만, 사회의 여러 직책에서 성인 여성이 리더가 되는 상황은 여전히 낯설고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여학생이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서 리더로 성장하는 궤적은 전 세계 중진국 이상의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험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EU와 OECD의 통계를 모아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Glass-ceiling index)에서 우리나라는 OECD 29개국 중 8년간 연거푸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바로 위로 일본과 터키가 있고,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로 알려진 스위스가 우리보다는 큰 점수차로 그 위에 자리잡고 있다. 6)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남녀 간의 임금 차이가 35%로 가장 심하고 (일본은 25%),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이 59%밖에 되지 않으며 (남성은 79%), 상장기업 임원의 2%만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비교 대상 국가들과 큰 격차를 보인다. 이러한 통계지표들이 우리나라의 성별 간 불평등한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예전보다 나아졌으니, 문제가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는 판단은 팩트에 기반하지 않은 기분적 느낌일 뿐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수면위로 크게 불거진 문제 중 하나가 젊은 여성들의 자살이 증가하는 문제이다. 7) 중앙대 장숙랑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30대인 80년대생과 20대인 90년대생 여성들은 그들의 엄마 세대인 50년대생과 비교하여 거의 5배와 7배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근본 원인을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데서 오는 좌절로 꼽는다. 여성을 핵심 인력으로 쓰거나 키우지 않고, 보조 인력이나 잉여 인력으로만 활용하는 전통적인 인사 관행들이 학창 시절에 우수했던 여학생들을 사회에서 좌절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정부가 대처방안으로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뿌리 깊은 인사 관행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막는 곳곳의 장애물들이 얼마나 빨리 제거될지 의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생태계에서 여학생이 성장하여 여교수가 되는 경력사다리를 전공별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0년 우리나라 4년제 일반대학의 학부에는 약 2백만 명의 학생이 적을 두고 있다 (표 참조). 8) 이들 중 여학생 비율은 전공별로 57.8%(인문)부터 20.1%(공학)까지 분포하며 전체 평균은 42.4%이다. 대학원생 중 여성 비율은 약 51%인데 전공별 분포는 대부분 학부생 분포와 비슷하고, 사회과학(58%)과 예술 체육 계열(64%)은 학부생 분포보다 약 10% 정도 높다. 대학원에서 학위 (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문 후속세대들이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할 때 대부분은 시간강사나 박사후연구원, 연구교수 등과 같은 비전임 교원의 자격으로 대학에 적을 둔다. 이들 비전임 교원의 숫자는 전국 4년제 일반대학에서 약 8만 3천 명 정도로 집계된다. 이들 중 약 40%가 여성이다. 경력사다리의 최상위인 전임 교수의 경우, 전국 약 6만 6천 명 중 24.7%가 여성이다.

표. 4년제 일반대학 학생과 교수의 전공계열별 성별 구성

  • 학부 및 교수 통계는 출처에 명시된 바와 같이, 4년제 일반대학 기준(교육대학, 산업대학, 기술대학, 방송통신대학 등을 제외한 191개로 전체 4년제 대학의 약 84%에 달함)이고, 학부생수 및 대학원생수는 재학생, 휴학생 등을 포함.
  • 계열분류는 출처에 제시된 분류를 따르되, 교육을 사회에 포함하여 재산정.

※ 출처: 2020 교육통계 분석자료집(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2020.12.)


   이들을 인문, 사회, 예체능, 자연, 공학, 의약학 전공별로 대별하여 대학원생과 비전임교원, 전임교원의 직위에 따라 여성 비율을 그래프로 나타내었다(그림 참조). 그래프를 보면, 모든 전공계열에서 경력사다리가 얼마나 가파른 각도로 꺾이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공학계열(20%)을 제외한 모든 전공에서 대학원 여학생의 비율은 45%를 상회한다. 대학원생에서 비전임 교원을 거쳐 전임교원으로 옮겨가는 경력사다리에서 여성 비율이 모든 전공에서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통계수치는 여학생들이 연구생태계의 경력사다리에서 남성에 비해 많은 이탈을 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비전임 교원들이 전임교수가 될 자격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라 본다면, 대학은 가용한 인재풀에서 여성을 전임교수로 제대로 임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통계가 드러내고 있다.

그림. 전공계열별 경력사다리(대학원생→비전임교원→전임교원)의 여성 비율



   우리나라 일반대학에서 전임 교수의 수가 가장 많은 전공은 공학계열이다. 총 14,500명의 공학계열 교수 중 900명 정도가 여성이다. 공학계열 여학생의 비율이 약 20%이고 비전임교원도 17%가 여성임을 고려할 때 공학 계열의 여교수가 대학원과 비전임교원의 여학생 수를 반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현재보다 약 3배 정도의 인원으로 늘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공학 계열의 여학생 수는 서양은 물론이고 아시아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적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경우 여학생 비율이 13%인데, 미국 MIT(46%)나 칼텍(38%)에 비해 한참 적은 수치이다. 공학 계열로 우수한 여학생들을 유인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롤모델이 될 뿐만 아니라 여학생 친화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교수를 더 많이 임용하는 것이다.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여성 롤모델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수학과목의 경우 여교수가 여학생의 학습효과에 더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9) 이미 젊은 여성 공학자들이 대학원과 비전임교원 풀에 상당수 배출되어 있으니, 이들을 전임교원으로 부지런히 임용한다면, 초중등 여학생들을 공학 계열로 유인하는 윈윈 효과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감춰진 차별과 편견의 인정;
개선의 출발점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하는 과정에서는 여학생들에게 눈에 띄는 불리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10-20년 전 대학원 진학의 문이 좁아 경쟁이 심했을 때 여학생들의 진입을 공공연하게 말리거나 또는 암암리에 차단했던 경우들이 많았던 것에 비하면 현재 상황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별이 대학원 이후의 경력 사다리로 전이되어 좀 더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경험자들은 알고 있다.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차별적인 행위들이 더 위력을 발휘한다. 대학원생에서 비전임교원, 이어서 전임교원으로 가는 경력 사다리의 기울기가 급하게 꺾이는 지점들에 많은 젊은 여성들이 좌절하고 포기하는 현장의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비전임직의 삶 자체도 각종 난관으로 인해 녹녹치 않지만, 그래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책임자나 리더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그렇게 심한 좌절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 전임교수의 비율이 그 전공분야의 가용 인재풀을 반영한 수치라면, 비록 그 숫자가 작더라도 학문후속세대의 여성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학교의 교수이건 사회의 리더이건, 인재풀의 성별 비율이 반영된 채용이 중요한 이유이다.
   정년보장을 받을 수 있는 전임교수직에 조교수로 임용되는 여성의 비율이 근래에 서서히 올라가고 있음은 그나마 고무적인 현상이다. 대학원 학위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사회로 진출한 젊은 여성인재들에게 가부장적인 교수사회나 보수적인 대학이 차츰 문을 열고 있다는 좋은 신호이다. 그러나 그 증가 속도는 경력 사다리의 감소 폭을 줄이기에는 너무 느려 이 시대의 시급한 화두인 젊은 여성인재들의 좌절과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교원 임용법 개정을 통해 국공립대학의 여성 교수 비율(현재 16%)을 향후 10년 동안 사립대학 평균과 비슷한 25%로 높이는 능동적 조치의 권고가 대학의 변화를 앞당기길 기대해 본다. 10)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연구 중심, 또는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사립대학들에서도 능동적 노력이 병행되어 변화의 속도를 앞당기길 기대한다.
   국공립대학의 여성 교수 임용이 능동적 조치의 권고로 인해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지만, 대학 평가의 불이익을 면하기 위한 수동적 대응 차원에 머무른다면, 대학 사회의 질적인 발전은 그만큼 지연될 것이다. 이 시점에 꼭 필요한 변화는 여성 교수의 적극적 채용과 승진에 대해 대학의 구성원 대부분이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채용과정에 있을 수 있는 숨겨진 편견과 차별 요인이 어떤 것인지 점검하고 드러내, 그 요인을 차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틸다 효과에 대한 신념을 가슴깊이 가지고 있는 교수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성은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고 보조적인 역할만 했을 것이라는 은연중의 편견을 작동시켜, 저명한 지도교수와 함께 낸 논문의 성과를 인정해 주지 않으려는 경향은 없는지 예의 주시하여야 한다.
   저명한 지도교수와의 공동연구 경력을 평가할 때 남성지원자는 훌륭한 네트워킹이 가능하여 앞으로 학술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인정해주는 반면, 여성지원자의 경우는 지도교수가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테니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데 부족할 것이라는 상반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편견은 여학생 제자를 향후 지도자로 키워낼 기대를 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해오도록 양육하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임 여성 교수를 멘토링 하여 리더로 키워주지 않고 방치하는 경향과도 연결된다.
   70년대 중반 필자가 학부 자연계열로 입학하여 2학년 때 학과 전공을 선택할 당시, 지도교수가 필자를 말리며, 여자가 무슨 공부를 하려 하느냐, 여자들에게 적합한 약사 직업을 가질 수 있게 약대로 진입하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필자가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80년대 중반에 조교수로 임용되자, 일을 잘한다고 평가하시면서, ‘여자지만’ 일을 꽤 잘한다고 진심 어린 칭찬을 하셨다. 옛날 일이고, 지금은 그런 고루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형태만 달라졌을 뿐,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않을 뿐,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전히 대학 사회에 너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그들을 인정하고 키워주면서, 리더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교수들의 본분이고, 대학의 사명이 아닌가. 딸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아들에게만 기대를 크게 가지는 고루한 부모가 여전히 존재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남의 딸인 여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스승이 고루한 부모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이 존재하는 대학은 인재 양성의 절반을, 아니 그 이상을 실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믿어주고 기대해 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일 진대, 성별에 따라 기대의 차이를 두고 있는, 우리 안의 감춰진 편견을 우리는 언제까지 못본 척 할 것인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선량하고 공정하다고 자부하는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품고 있는 편견과 차별이 얼마나 많은지를 여러 차원에서 드러내고 비춰보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11)
교수 사회의 변화;
다양성 임용
성별을 불문하고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암암리에 작용하는 차별을 없앨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성별이나 학벌로 과소 대표된 (under-represented) 집단의 후보자를 면접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한 방안일 수 있다. 서울대학교 다양성 보고서에서 교수 현황을 “다양성 임용”의 측면에서 학과/전공 단위별로 집계하는 것은 각 학과별로 교수 구성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들여다보게 한다. 전임교원 중 여성, 타교 학부 출신, 외국 국적 중 한 개이상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교원의 비율을 ‘다양성 임용’으로 집계하고, 성별, 학문적 훈련, 국제화를 반영하는 교원 다양성의 한 지표로 활용한다. 같은 대학(학과) 학부 출신의 남성 교수가(또는 여성 교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성별이나 외국인, 또는 타교 출신 교수 비율이 심각히 적지 않은지, 또는 학과 교수의 대부분이 한 나라나 (예를 들어 미국) 한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학문의 동질성이 너무 높지 않은지 등을 점검할 수 있다.
   다양성 임용을 늘이기 위해 과소 대표된 집단의 후보자들을 면접 대상에 포함시키더라도, 면접과정에서 불이익을 주지 않는지도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기성 교수들과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지원자들에게 면접 시 최대한 예의를 갖춘 질문을 통해 이들이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화를 돋우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질문을 통해 지원자의 위기 대처능력을 시험해 본다는 면접 전략은 갑질과 편견의 위장된 표현일 뿐이다. 여성 지원자에게만 유독 결혼 여부, 가정과 일의 병행 방법을 걱정하며 해법을 요구하는 무례한 면접, 타교 출신 지원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무심하고 불친절한 안내 등은 이들을 선발하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무언으로 드러내는 방식일 수도 있다. 다학제적 융합과 혁신이 수월성(excellence)의 근원임을 상기한다면, 비슷한 생각과 경력을 가진 교수들만 모여있는 학과가 과연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 도태를 면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다양성 임용의 비율이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한 2016년 29.1%에서 2019년 32.1%로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양성에서 힘이 나오고 다양성이 수월성의 기반이 된다는 의식이 공유되며, 다양성 임용이 더 큰 폭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다양한 비전임 전문가들의
가시화
앞에서 언급한 대로, 대학에는 다양한 이름의 비전임 교원 또는 연구원이 있다. 시간강사, 강의전담교수, 연수연구원(포닥), 연구교수, BK교수, HK연구교수, 산학협력중점교수, 연구소 소속 연구원 (책임, 선임, 원급, 객원), 초빙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등. 이들 중 겸임, 객원, 초빙교수 등의 직함은 이미 직업이 있는(던) 경력자를 교류나 부분 고용 형태로 채용하는 경우에 부여된다. 교류/부분고용 형태를 제외하고, 전업(full-time)으로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비전임 교원/연구원들의 수가 상당한데, 이들에 대한 통계는 현재 매우 불투명하고, 부정확하다.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가 2016년 보고서를 내기 시작하면서 천착한 부분의 하나도 전업(full-time) 비전임 교원/연구원에 대한 통계이다. 서울대의 경우, 2019년 현재 강의전담 교수와 전업 시간강사(학기당 3과목 이상 담당)로 일하는 전업 비전임 교육 중심 교원은 803명(여성 60%)이고, 연구교수와 포닥, 연구소 소속 연구원 등 전업 비전임 연구 중심 교원/연구원은 1,397명(여성 40%)으로 집계된다. 전업 비전임 교원/연구원 (2,200명)은 전임교수의 수(2,245명)와 거의 같고, 이들 중 47%가 여성이다. 12) 교류/부분고용까지 포함한 전체 비전임들은 모두 3,378명으로 전임교수의 1.5배 수준이다. 이들 비전임 교원/연구원들은 그동안 학교의 공식통계에는 집계되지 않았고, 다양성위원회에서 통계를 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이들을 대상으로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었고 (연구책임자: 이강재 교수), 그 결과가 다양성보고서에 특집으로 수록되었다. 13) 이들의 가장 큰 고충 사안은 고용 불안정이며, 전업 시간 강사가 고용 안정성이나 소득 면에서 가장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조사들은 향후 여러 직책의 비전임 교원/연구원들에 대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연봉과 복지를 비롯한 복무 조건의 표준화와 개선을 위한 정책 수립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교육부 공식 통계로 잡히지 않는 전업 비전임 연구자들에 대해 대학이, 특히 BK21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대학들이, 그 현황과 분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울타리 밖의
외국인 연구자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국제 영화상(외국어 영화상) 부분에만 유력 후보에 오르고 다른 부분 후보에는 아직 노미네이션 되지 않았을 때,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미국 “로컬 영화제”로 규정하여 발언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얘기하며, 외국작품들의 소외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분 상을 석권하게 되자, 우리는 비로소 외국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아준 ‘글로벌’한 아카데미상에 마음껏 찬사를 보냈다. 구미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 일을 하거나 유학을 하며 살아본 사람들은, 유색인종으로서 백인들의 사회에 제대로 끼어들 수 없음을 피부로 또는 뼛속 깊이 체험한 경험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소수자들이 주류의 사회에 끼어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살아보지 않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기생충’이란 작품의 세계적인 인정은 마치 인종과 문화의 벽을 한국인 전체가 함께 넘어선 것 같은 속 시원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우리가 입장을 바꿔서, 우리나라 안에 우리와 함께 있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내 4년제 일반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외국인 교원은 6,300명 정도이고, 이중 전임교원은 4,100여명으로 전체 전임교원의 6%에 해당한다. 14)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외국인 학생 수는 38,100여 명으로 전체 대학원생의 12%에 달한다. 서울대학의 경우 외국인 전임교수는 전체 전임교원의 4.7%인 105명인데, 2016년 5.2%에서 계속 비율이 줄고 있다. 대학원 학생의 경우 전체의 5.1%가 외국인인데, 이 비율도 3년째 계속 감소 중이다. 외국인 교수의 상당수는 외국 국적을 가진 교포로 추정되며, 국제화의 관점에서 외국의 주요 대학들과 비교하여 매우 뒤쳐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5)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전임교수들이 교육과 함께 연구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고, 외국인 학생들이 충분히 역량 발휘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외국인 전임교수의 연구활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는 연구비 수주 현황이다. 한국연구재단이 2020년에 지원한 전체 연구과제의 책임자 37,000명 중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연구자는 1.7%인 630명에 그친다. 16) 연구자 네트워크에서 소외되고, 영문 정보와 서식의 부족 등, 정보의 비대칭에서 비롯되는 장애가 상당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다양성위원회가 설립을 지원한 서울대 국제교수회 회장 소냐 마틴교수가 지적한 대로, “국제화를 세계 대학평가에서 대학 순위를 올리기 위한 평가 항목 이상으로 생각해야 하고, 조직 전체에 걸쳐 여러 권한을 가진 구성원들이 국제화를 받아들여야 하며, 국제화가 내국인 교원과 학생들의 강의/학습/연구에도 많은 혜택을 준다는 점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계획이 공유되어야 한다.” 17)
생태계의 건강성
자연의 생태계에서 다양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조망된다. 하나는 특정 공간의 생태계를 이루는 생물종(種, species)의 종류와 개체 수를 따지는 종다양성(species diversity)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한 종으로 이루어진 집단 또는 군집(群集, population)내 개체(individual)들의 다양성 차원이다. 지역적인 생태계와 지구 생태계 전체는 종다양성이 충분히 유지되어야 건강성이 유지된다.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된 생태계의 그물망은 멸종에 의한 종다양성의 감소로 구멍들이 생기게 되면, 생태계 전체의 존속이 위협받게 된다. 한 종에 속한 모든 개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멸종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의해 초래되는데, 특히 집단내 개체들이 유전적 동질성을 갖는 집단은 환경적 역조건을 만날 때 한꺼번에 몰살될 가능성이 크다. 집단 내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개체들이 많이 섞여 있을 경우, 즉 다양성이 큰 집단일수록,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세균이나 곤충의 집단에서 항생제나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는 변이 개체들이 섞여 있으면, 항생제나 살충제의 공격을 받더라도 소수의 저항성 개체가 살아남아, 집단의 존속을 이어가는 현상들이 자연계에서 변이 또는 다양성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현상들이다. 바이러스들이 변이를 일으키는 것도 면역계의 공격을 피하는 생존전략으로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구성원들이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목적이나 가치를 공유하며 활동하는 연결망을 이룰 때 생태계라는 생물학적 용어를 원용하여 지칭한다. 교육 생태계, 금융 생태계, 연구 생태계, 창업 생태계 등 다양한 인간활동들이 자연 생태계의 현상과 원리로 비유되고 이해된다. 따라서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다양성이라는 생물학적 진리는 인간활동의 생태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양성(변이)이 진화를 가능케 한다는 기본 원리도 인간의 생태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각종 활동 생태계에서도 구성원의 다양성, 연결과 작동 방식의 다양성이 핵심 가치가 되며, 인간이 만드는 생태계의 진화도 ‘남들과 다른’ 개인의 출현과 공존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연구생태계에서
다양성의 힘
우리는 어떤 연구생태계를 바라는가. 생태계인 이상 당연히 지속가능하게 진화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를 하면서 바라는 목표는? 지식의 진보와 우리 국민을 포함한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기존에 없던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성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거기에서 수월성이 배태된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연구생태계는 지속가능하게 진화 발전하며, 새로운 발견을 탁월한 성과로 이어갈 수 있는 연구공동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기본 속성인 지속가능성과 진화, 창의성과 수월성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성’이란 가치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양성은 약한 존재를 끌어안아야 하는 윤리적 차원의 “배려”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생태계의 건강성과 지속성, 역동성과 수월성을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의 역할을 한다. 유전자와 교육, 경험과 시각이 다른 개개인들이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활발하게 협업할 때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는 것을 기업들은 이미 경영 원리로 활용하고 있다. 다양성이 곧 “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18) 동질성은 곧 퇴화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학계나 연구생태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최고의 업적들은 학제를 뛰어넘는 융합연구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진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연구과제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전염병이나 기후변화, 미래 에너지나 난치병, 우주 개척 등 거의 모든 굵직한 연구주제들은 다학제, 초학제 공동연구를 통해 접근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관점이 다른 구성원이 섞여 있어야 기존의 전통적 질문과 다른 참신한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질문을 풀어갈 새로운 방식들을 찾아낼 수 있다. 다양한 전공의 학력과 경력, 성별과 국적, 사고방식과 문화가 다른 개인들이 다름의 가치를 존중하고 소통할 때만이 복잡한 연구주제의 탁월한 해결이 가능하다. 연구를 통한 지식의 창출을 우선적 가치로 삼는 대학의 연구생태계에서 다양성이 힘이 될 수 밖에 없다. 19)
한국연구재단의 역할
한국연구재단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수행되는 연구와 인력양성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와 교육부가 시행하는 각종 연구사업과 대학 재정지원사업들이 연구재단을 통해서 집행된다. 2019년 기준 연구재단은 인문 사회로부터 이공, 의약학에 이르는 학문 전 분야에서 약 3만 8천 과제를 지원했고, 이 중 대부분인 3만 3천 개의 과제가 대학에서 수행되었다. 대학이 정부로부터 받는 연구비의 80% 이상인 약 4조 1000억 원이 연구재단을 통해 지원된다. 20) 대학 외에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 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한 10개 이상의 정부 출연연구소들도 연구재단의 연구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연구재단이 지향하는 비전이 “학술∙연구의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연구지원 글로벌 리더”인 것은 매우 적절하다.
   학술∙연구의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연구재단은 구성원의 다양성과 구성원 간 연결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임무, 생태계의 건강성을 위해 연구 윤리와 책임성 있는 연구를 뒷받침하는 임무, 포용적이며 개방적인 연구 문화를 확산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점검할 요소들은 학문 분야, 연구자의 연령, 성별, 직위, 지역적 분포, 소속기관, 국적, 장애 여부 등 여러 측면이 될 것이다. 마땅히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해야 할 집단 중에 과소대표되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참여를 늘릴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인지를 모색해야 할 임무가 있다. 과제를 심사하는 평가자와 평가자를 추천하는 전공 분야별 대표자들 (Review Board; RB)의 균형적 다양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비전임, 지역, 외국인 등 과소 대표된 집단의 참여를 적정한 수준으로 올리고 경쟁력을 유지하게 지원할 포용적 방안들이 필요하다.
   연구자 구성의 다양성이 빛을 발하려면, 학문적 배경이 다른 연구자들이 문제를 함께 정의하고, 함께 풀어내는 융합연구의 성공사례들이 더 많이 축적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또한 연구자들 간의 연결이 더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소통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자유로운 영혼의 젊은 연구자들이 등장하면서, 학문 분야나 학벌 중심으로 남아있던 폐쇄적 클럽 문화가 이제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모든 사물의 인터넷 연결에 더해 모든 사물의 인공지능화, 극단의 진폭이 점점 커지는 기후변화, 두려운 상상이 즉시 현실로 대두되는 전염병의 위협 등 우리의 코앞에 다가온 지구적 난제들은 과거의 전통적 학문방식으로는 풀 수가 없다. 지역과 글로벌,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적 문제가 함께 섞인 문제를 풀기 위해, 문제를 풀고자 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모든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조합을 이루고 힘을 합쳐야 한다. 연구재단은 창의적 문제 풀이를 위해 연결의 다양성을 높일 방안도 꾸준히 모색하고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학술∙연구의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비전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
목차
다양성의 가치로 풀어낸 가능성
극장은 다양성의 산물
듣기
화면 설정
arrow_drop_down
  • 돋움
  • 바탕